역사속에 오늘, 9월/9월 14일

이사도라 던컨, 하늘 나라로 가다

산풀내음 2016. 8. 21. 09:27

19279 14,

이사도라 던컨, 하늘 나라로 가다

 



이사도라 던컨 (Isadora Duncan. 1878 5월 26 ~ 1927 9월 14) 1878년 자본가의 딸로 4남매 중 막내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난 해 아버지가 운영하던 턴컨은행은 파산했고 당신 신문은 이 사건을 가리켜금주령을 모범적으로 지킨 사람들을 주정뱅이로 만들고, 도덕적인 사람들을 반사회적인 위법자로 만든 일이라고 보도할 정도로 사회적 영향이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부모는 이혼을 했다.

 

생계를 위해 끝없이 돈벌이에 매달리면서도 그녀의 가족은 시와 음악을 중시했다. 그녀는 음악을 가르치던 어머니에게서 시와 음악을 배우며,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추곤 했다. 어릴 적부터 발레를 배웠으나, 정형화된 동작과 제약이 많은 발레의 특성 때문에 던컨은 종종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나를 찬양하고 나를 노래하리라. 그리고 내가 취한 것에 그대도 취하리라”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들려주었고 그리고 좋아했던 휘트먼의 시 나 자신의 노래처럼, 그녀는 꽉 끼는 슈즈를 벗어버린 맨발과 코르셋을 벗어버린 맨 몸으로 내면을 표현하려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무용으로써 승화시킨다. 그리고 이 몸짓이, 훗날 현대무용의 시초가 된다.

 

던컨은 시카고에서 무용수로 데뷔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1899년 유럽으로 건너가 런던과 파리에서 박물관에 드나들며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기 시작한다. 그리스 석상들을 보며 영감을 얻은 그녀는 그리스 의상과 같은 줄 몇 개로 고정한 넝마를 입고 맨발로 춤을 추었다.

 

1900파리에서 그녀 나름의 독특한 새로운 무용을 발표, 그곳에서 처음으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유럽의 각 도시를 순회공연하고, 각지에서 그녀가 주장하는자유댄스를 발표·선전했으며, 독일에서는 가장 강력한 지지를 획득했다.

 


  

명성을 얻어가면서 그녀는 가정을 가지게 되었고 에드워드 고든 크레이그와의 사이에서 딸 데어도르를 낳았다. 그리고 두 번째 남편인 미국의 재력가 패리스 싱어(Paris Singer)와의 사이에서 아들 패트릭을 낳았다. 이 아이들이 이사도라 인생의 가장 큰 비극으로 자리 잡는다. 폭우 속에 보모와 함께 집으로 가던 차가 센 강에 빠져 두 아이가 생명을 잃은 것이었다.

 

아이들이 죽은 뒤 1914년 던컨는 43살의 나이로 러시아에 간다. 이보다 앞서 던컨는 1905 러시아를 처음으로 방문하였고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미하일 포킨에게 강한 자극을 주었으며, 그러한 원동력으로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가 결성되었다.

 

러시아에 간 그녀는 아들인 패트릭을 너무나 빼 닮은 젊은 시인인 25살의 예세닌을 만나 결혼한다. 던컨의 예세닌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와도 같은 한없는 이해와 염려, 헌신의 모습을 띤다.

그러나 그들의 15개월에 걸친 신혼은 악몽 그 자체였다. 예세닌은 술에 취하면 던컨을 더러운 늙은 암캐라고 불렀고, 뛰쳐나갈 때까지 폭행했으며, 호텔 기물이 산산조각 날 정도로 파괴했다. 그는 신경쇠약, 알코올 중독, 간질에 시달렸고 광적으로 돈, 반지, 시계, 술 등을 탐닉했다.


 

구소련의 청년시인 세르게이 예세닌과 결혼한 이사도라 던컨 1923년 모습

 

그와 함께 미국에 건너갔지만, 예세닌은 미국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녀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볼셰비키 창녀라고 손가락질하며 욕했고, 그녀가 천 명의 남자들 앞에서 옷을 벗고 관계를 가졌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결국 이사도라와 예세닌은 15개월간의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1925년 겨울, 러시아로 돌아간 예세닌은 극도의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신혼 때 들렀던 호텔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27 9 14일 프랑스 니스에서 던컨은 새로 알게 된 남자와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 붉은 색 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오픈형 스포츠카에 올랐다.

그리고 차가 출발하자 그녀의 목을 감싼 긴 스카프는 차 뒷바퀴에 감겼다. 가녀린 목은 순식간에 꺾였고, 그렇게 그녀의 생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