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16일

마거릿 생어, 산아제한클리닉 개소

산풀내음 2016. 10. 5. 20:31

191610 16,

마거릿 생어, 산아제한클리닉 개소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1883 9월 14 ~ 1966 9월 6)는 “어머니가 될 것인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뜻대로 선택하게 되기 전까지는 어떤 여성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어머니가 되지 않을 권리’를 제창했다.

그 스스로 11명의 자녀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고, 48세에 숨진 어머니를 통해 잦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건강에 끼치는 폐해를 깨달았다. 그래서 생어는 ‘과도한 출산과 가난’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산아제한 운동에 뛰어들어 피임법의 전도사가 되었다. ‘산아제한(birth control)’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도 생어였다.

 

 

피임에 대해 교육조차 금지되어 있었던 때여서 임신은 여성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손에 놓여 있었고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많은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 애쓰다가 죽어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산아제한 운동’은 남성 위주의 주류사회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1914년 그녀는 「산아제한평론」을 발간하면서 적극적으로 산아제한운동에 나선다. 이 운동은 여성이 스스로 임신을 조절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자는 여성운동이었다. 그러나 1873년 제정된 풍속교란방지법으로 그녀의 책은 독자들에게 우송되지도 못했다.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161016, 생어는 미국 최초의 ‘산아제한클리닉’을 뉴욕 브루클린에 개소했다. 464명이나 다녀갈 정도로 여성들이 큰 관심을 보이자 열흘째 되는 날 경찰이 들이닥쳤고, 공안질서방해죄로 체포되어 노동형을 선고 받으면서도 그녀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성병 예방과 치료를 위해 여성에게 피임기구를 제공할 권한을 의사에게 준다’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는 제한적이나마 여성에게 피임의 권리를 부여한 첫걸음이 되었다

 

1939년 의사에게 무제한으로 ‘피임처방권’을 부여하는 법이 제정되고 1960년 생어와 과학자들은 먹는 피임약을 개발해냄으로써 산아제한 운동은 역사를 새로 썼다. 이 경구용 피임약의 개발로 여성들은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활동을 앞당겼을 뿐 아니라 여권 신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관습과 여성 억압에 굴하지 않았던 한 여인의 인간 승리는 여성과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기술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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