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16일

중국, 첫 원폭실험 성공

산풀내음 2016. 10. 5. 20:54

196410 16,

중국, 첫 원폭실험 성공

 

1964 10 16일 중국이 처음으로 원자폭탄 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서에서는 실험이 북경시간 오후 3시에 실시됐다고 밝혔다. 실험 장소에 관한 언급은 없었으나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서쪽의 신강성으로 확인됐다. 미국(1945), 소련(1949), 영국(1952), 프랑스(1960)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 핵 보유국이 됐다.


 

October 16, 1964, Chinese officials give command for detonation of bomb(L), China successfully exploded its first atomic bomb.(R)


 

중국 외교부가 2008년 공개한 비밀 문건에 따르면 1954 103일 중·소 정상회담이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열렸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을 찾은 후르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마오쩌둥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소련의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했다. 이유는 소련의 핵으로 충분히 다른 사회주의 국가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은 1955 1 15일 비밀리에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확대회의에서 핵개발 착수를 결정했다.

그리고 중국은 계속해서 소련에 개발에 따른 기술적 지원을 요청했고 마침내 1957년 소련으로부터 승낙을 얻어냈다. 1957 1228, 중·소 두 나라는 핵 전문가들을 상호파견하고 공동개발협력에 동의하는 내용을 담은 총 6건의 중·소 신기술협정에 서명했다. 협정에 따라 소련 핵 전문가 3명이 1958 7월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들은 9명의 중국학자에게 원폭 제조와 관련된 강연을 하였는데 이 때 조건은 필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학자들은 몰래 필기를 하였고 이를 기초로 정리한 문건이 바로 중국이 외국에서 입수한 최초의 원자폭탄 개발관련 자료였다. 그리고 이후에도 극히 제한된 부분만 도움을 주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1958년 마오쩌둥과 후르시초프간에 스탈린의 평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7 31일 후르시초프가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 연해에 소련 해군 기지 확보를 요청했다가 마오의 호통과 함께 면전에서 거절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1959626, 소련은 중국에 공식서한을 보내 원폭 개발 지원 중단을 통보했고, 이어 823일에는 중·소 신기술협정 종료를 선언하면서 중국에 왔던 전문가 1000여명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결국 소련 전문가들은 전원 철수했고, 중국은 자국 과학자들을 동원해 원자폭탄 독자개발에 나섰다. 프로젝트 이름은 ‘596 공정’이라고 붙였다. 중국 지도부는 건국 15주년(1964) 국경절(101)까지는 원폭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962,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위원장으로, 7명의 부총리와 7개 부처 부장을 위원으로 한 거국적인 핵개발 ‘중앙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중앙의 26개 부처 및 위원회, 20개 성, 900여 개 공장과 연구소, 대학들은 물론 인민해방군도 참가했다. 원폭 실험 성공 소식을 전해들은 마오쩌둥은 “(전문가들을 철수시켜 독자 기술 개발의 기회를 준) 흐루시초프에게 1t짜리 큼지막한 훈장을 줘야겠다”고 농담 삼아 말했다.


Qian Xuesen is regarded as the father of Chinas atomic bo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