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19일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산풀내음 2016. 10. 8. 09:56

197310 19,

최종길 교수 의문사

 

1973 8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지 겨우 2달 지난 1973 10 19일 중앙정보부가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국내 간첩조직망에 대한 여죄를 조사받던 중 혐의 사실을 자백한 뒤 용변을 보겠다고 변소에 간 뒤 7층 변소 창문에서 투신자살했고, 그와 최근의 학원 사태와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는 투신했다는 현장도 공개하지 않고 부검도 완강히 거부했다. 중앙정보부의 태도는 고문에 의한 타살을 은폐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의심을 받게 했다.

 

 

최종길 교수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 스위스 취리히 대학, 독일 쾰른 대학에서 공부하고 1962년부터 서울대 법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당시에는 대학 강의실에 프락치들이 들어와 교수와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경찰을 비롯한 기관원들이 학교 안까지 들어와 학생들을 때리고 잡아가던 시절, 1967년부터 도서관장과 학생과장 등의 보직을 맡으면서 이런 현실에 가슴 아파했다.


 

최종길 교수 가족사진

 

10 4일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문리대에 이어 유신반대 데모에 나섰다가 구금되자 열린 긴급교수회의에서 최 교수는 “학생들의 행동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 스승으로서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한편 1973 10월 당시 최종길 교수의 막내 동생 최종선은 마침 중앙정보부 감찰실에 근무하고 있었고 10 13일 동료로부터 동베를린 사건 비슷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데, 북한 공작원 이재원과 중학교 동창생인 최 교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후 최종선은 형에게 이와 관련하여 중앙정보부에서 수사협조 요청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10 16일 형과 함께 중앙정보부 남산청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형 김종길 교수가 10 19일 새벽 130분께 7층 화장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사실을 같은 날 새벽 5시에 통보 받았다. 그러나 이미 주검은 어디론가 치워진 뒤였다.

 

한편 중앙정보부는 10 25일 ‘유럽 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면서 최 교수가 여기에 포함되었다며 3명을 구속하고 17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31명에게 경고조치를 했다고 발표한다.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유럽 유학이나 출장을 다녀온 학자와 공무원들로 유럽에서 북한 공작원과 연계해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최 교수의 경우 간첩단 총책 이재원에게 간첩으로 포섭되어 입북하여 미화 1000달러를 받고 1962년부터 1967년까지 매년 2회씩 활동 상황을 보고했으며 1970년 미국 체류 중에 북한 공작원과 접촉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교수, 재야 인권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하였고 유족들은 “투신자살했다는 시간은 중앙정보부의 모든 창문이 잠겨 있을 시간이며, 투신현장이 공개되지 않았고, 부검조차 거부됐으며, 거듭된 협박에 급히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으로 유신정권의 고문에 의한 타살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이듬해 1974 12월 명동성당 추모미사에서 ‘최종길 교수와 떠난 모든 형제를 위한 추모 미사’를 열고 최 교수가 전기고문 도중 조작 실수로 심장파열을 일으켜 사망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다 2002 5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유럽 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 자체가 당시 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밝히면서 최 교수의 억울함도 그제야 풀렸다. 위원회는 “최 교수는 정보부의 고문과 협박 등 각종 불법수사에도 불구하고 강요된 간첩 자백을 하지 않았다. 적극적 항거 외에 권위주의적 공권력 행사에 순응하지 않음으로써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행위도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활동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최 교수 죽음의 민주화 운동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결론지었다.


15년 공소시효 만료일이었던 1988년 10월18일 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최종길 교수 추모 미사에 참석한 유족들. 앞줄 왼쪽부터 최종숙(큰누님), 최광준(아들), 백경자(부인), 최희정(딸), 뒷줄 중앙 최종선(막내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