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23일

몽고메리가 롬멜을 제압한 엘 알라메인 전투 (Battle of El Alamein)

산풀내음 2016. 10. 8. 18:41

194210 23,

몽고메리가 롬멜을 제압한 엘 알라메인 전투 (Battle of El Alamein)

 

1942 10 23일 북아프리카 이집트 서쪽에 위치한 엘 알라메인에서 영국의 몽고메리가 `사막의 여우` 독일의 롬멜을 꺾고 2차대전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처칠이 "엘 알라메인 이후 우리는 결코 패배의 맛을 보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이 전투는 중요했다.


 

영국의 몽고메리와 독일의 룸멜

 

2차 대전 초기 북아프리카는 유럽의 주전투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히틀러의 서유럽 정복에 자극 받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지중해를 `이탈리아의 호수`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면서 북아프리카도 2차대전의 주요 전장으로 부상했다.

 

1940 9 13일 무솔리니는 5개 사단을 이끌고 이집트를 침공했다. 침공 3일 만에 70마일을 진격하는 등 승승장구를 계속했다. 이탈리아 군단은 리비아에서 이집트를 방어하는 영국군과 충돌했는데, 이탈리아 군단은 보급품 문제로 영국군에 의해 반격당함으로써 이집트 정벌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이탈리아는 이 전투에서 31천명의 영국군에 13만 명이 포로가 되었고 400여대의 전차 등 각종 무기를 빼앗겼다이 무렵 영국군은 몰타와 알렉산드리아 공항에서 이탈리아를 공습했고, 베니토 무솔리니아돌프 히틀러에게 독일군 기갑사단을 달라고 요청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지원을 요청하자 `전술의 천재` 에르빈 롬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 1891 11월 15 ~ 1944 10월 14) 2개 기갑사단을 리비아에 파견했다. 대담하면서도 치밀한 롬멜은 적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가히 `사막의 여우`였다.

 

롬멜과 영국군은 리비아의 트리폴리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약 14km마일에 이르는 서부사막에서 1년 동안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그러던 1942 6 21일 롬멜이 마침내 영국군 저항의 상징인 토브루크를 함락시키고 국경을 넘어 이집트 내로 깊숙이 전진, 30일에는 엘 알라메인 전방에 이르렀다.

 

 

8 13일 처칠 수상은 지난 7개월 동안 궤멸 직전의 타격을 받은 영국군 제8군 사령관을 몽고메리 (Bernard Law Montgomery, 1887 11월 17 ~ 1976 3월 24)로 교체하면서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롬멜은 시간이 흐를수록 보급난에 시달리는 독일군이 더 불리해 질것으로 판단, 선제공격에 나섰다.

 

1942 8 30일 밤, 롬멜은 공격을 개시했다. 작전의 성패는 속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접근로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데 하룻밤을 소비했고 알람 엘 할파 능선을 공격할 때는 불행히도 몽고메리의 매복에 걸리고 말았다. 독일군은 49대의 전차를 잃고 철수해야 했다. (1차 엘 알라메인전투)

 

이후 롬멜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엘 알라메인을 고수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그리고 주변에 50만 발의 지뢰를 매설해 영국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한편 몽고메리는 당시 전투력이 독일군에 비하여 2배나 앞서 있었지만 서둘러 추격하지 않고 공격할 때를 기다렸다.


당시 군수물자 보급에 있어서도 독일은 원활하지 않았고 도중에 영국군의 공격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롬멜이 병이 나서 본국으로 치료 차 떠나게 되었고 후임으로 게오르크 시투메가 부임하였다.

 

몽고메리는 공격 개시일을 10월 23로 정하고 주공을 북쪽의 가장 강력한 방어진지로 택했다. 엘 알라메인 전투는 오후 9 30분 영국군의 폭격기로부터 시작됐고 곧 이어 900문의 대포가 불을 뿜었다. 예상치 않은 기습공격에 독일군은 당황했다. 게다가 롬멜이 신병치료 차 독일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은 더했다. 롬멜이 급히 현지에 도착했으나 이미 사태는 영국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독일군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끝에 튀지니까지 밀렸고 알제리에 도착한 연합군에 협공을 당해 결국 1943 5, 항복했다. 신병치료를 위해 이미 독일로 피신한 롬멜은 3만 명의 포로와 2만 명의 전사자, 그리고 1만 개 이상의 포와 5백대의 전차 대부분을 빼앗기는 뼈아픈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2차 엘 알라메인 전투)

 

Montgomery watches Allied tanks adv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