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23일

안기부, ‘43년 만에 북한 탈출한 국군포로 조창호씨 구출’ 발표

산풀내음 2016. 10. 8. 18:53

199410 23,

안기부, 43년 만에 북한 탈출한 국군포로 조창호씨 구출’ 발표

 

6·25전쟁 중 포로로 끌려가 전사한 것으로 처리됐던 국군 소위 조창호가 43년 만에 북한을 탈출, 고국의 품에 돌아왔다. 그는 1994 10 3일 뗏목으로 압록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 대연(다롄)에서 밀항선을 타고 전북 군산 서남방 약80마일 해상에서 떠돌다 10 23일 새벽 수산청 소속 어업지도선에 의해 구조되었다.

 

연세대 교육학과 1학년에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에 소위로 자원입대했던 그는 1951 8월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 포로가 됐다.

북한의 전향 회유를 끝내 거부하자 1952년부터 그는 북한 내 악명 높은 덕천, 서천, 함흥 등지의 노동교화수용소에서 12 6개월간 갇혀 지냈다. 고인은 다시 13년간 구리광산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규폐증 판정을 받고서야 탄광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 조씨가 실종된 뒤 소식이 끊기자 군에서는 조씨가 1951 9 10일 중부전선에서 전사한 것으로 처리, 국립묘지 현충탑 지하 위패실에 육군 중위로 위패카드가 봉안돼 있었다.

 

고국에 품에 안긴 그 해 11월 조창호씨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중위 계급장을 달고 전역했다. 1995년 윤신자(66)씨와 결혼했고 같은 해 모교에서 학위도 받아 대한민국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신을 다시 찾은 듯했다.

그러나 그는 안락한 생활에 머물지 않고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할 때마다 집회 등에 참여해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해 왔다.


북한에서부터 평소 규폐증을 앓아오던 조씨는 2006 11 19일 오전 12 30, 생환한 지 12년 만에 경기도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 씨가 있으며 북한에서도 결혼해 2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