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27일

알프레드 노벨, 노벨상 제정

산풀내음 2016. 10. 19. 22:47

1901 11 27,

알프레드 노벨, 노벨상 제정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는 1893년에 한 평화운동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산의 일부를 한 재단에 기부하여 5년마다 수여되는 상을 제정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같은 해 3 14일에 최초의 유언장을 작성하여 유산 가운데 20%는 일가친척에게 나누어주고, 17%는 병원과 의학연구소 등 여러 단체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학문적으로 공적이 큰 사람들에게 상으로 줄 것을 구상했다. 이어 1895 11 27일에 세 번째로 수정하여 확정한 유언장에서, “지난해에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 (prizes to those who, during the preceding year, shall have conferred the greatest benefit to mankind.)”고 밝혔다. 그는 1896 12 10일에 죽었다.

 

 

그가 죽은 후 노벨상위원회와 기금 등이 마련되어 1901 11 27일 노벨상이 제정됐고, 12 10일 오후 4 30, 스웨덴 스톡홀름에선 제1회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5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1901년부터 ‘물리학, 화학, 의학, 문학, 세계평화에 대한 기여’ 다섯 분야에 걸쳐 노벨상이 수여되었고, 1968년부터는 스웨덴 제국은행이 별도로 기금을 마련하여 수여하는 ‘노벨 경제학상’이 추가되었다.

 

물리학상 뢴트겐(독일), 화학상 호프(네덜란드), 생리·의학상 베링(독일), 문학상 프뤼돔(프랑스), 평화상 앙리 뒤낭(스위스). 각 수상자들에게는 각각 메달과 함께 43000달러의 상금이 수여됐다. 지금은 상금 5천만엔 짜리 교토상 같은 것도 있긴 하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액수였다.

 

노벨이 이 상을 제정한 이유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1888년에 노벨의 형이 사망했을 때 프랑스의 신문들이 그를 형과 혼동하면서 내보낸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뒤 충격을 받아 죽은 뒤의 오명을 피하기 위해 제정했다는 것이다.

 

알프레드 노벨은 1833 10 21일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그는 1842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뢰 공장을 차려 성공한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갔다. 주로 가정교사한테 교육을 받았는데, 17세에 모국어인 스웨덴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그는 17세가 되던 1850년에 파리에서 1년 동안 화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스웨덴 출신의 발명가인 존 에릭손 밑에서 4년 동안 일하며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그 무렵 폭약 등 군수물자 생산으로 번창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크림전쟁이 끝나면서 몰락하기 시작하자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 아버지를 도왔으나 아버지 사업은 1859년에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1860년경에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 해 니트로글리세린 제조법으로 특허를 받아 사업가 기반을 마련했다. 1864 9월에 스톡홀름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동생을 비롯하여 다섯 명이 사망했는데도 그는 한 달 후에 첫 합자회사를 차렸다. 스웨덴 정부는 공장 재건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배 위에서 니트로글리세린 취급에 따른 위험을 극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실험했다.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산질 충전물질인 규조토로 스며들게 한 뒤 건조시켜 안전한 고형 폭약 다이너마이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1867년과 1868년에 영국과 미국에서 다이너마이트 관련 특허를 따냈고, 1876년에는 폭발성 젤라틴을 개발하여 특허를 받았다. 그는 40세의 나이에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스웨덴, 독일, 영국 등에서 계속 공장을 세웠고, 1886년에는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회사 ‘노벨다이너마이트트러스트사’를 세웠다. 그 동안 그의 형인 로베르트와 루트비히는 카스피해 서안에 있는 바쿠 유전지대 개발에 성공하여 노벨 가문은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The Nobel Prize Award Ceremony in Stockholm, Swe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