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30일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 종방

산풀내음 2016. 10. 20. 21:07

1980 11 30,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 종방

 

1980 11 30일 동아방송(DBS)과 동양방송(TBC)은 언론사 통폐합 조치의 결과로 종방을 내보냈다.

"국가보위와 사회정화의 역사적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언론계 자체가 안고 있는 저해 요인을 과감히 자율적으로 척결하며, 언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체의 부조리와 비위를 근절하여 새로운 언론풍토를 조성할 것을 다짐한다."


1980 11월 전두환 군부의 동양방송과 동아방송의 KBS통폐합 조치를 보도한 당시 신문들. ⓒ연합뉴스

 

동아일보가 운영하였던 라디오 방송으로 1963 4 25일 첫 전파를 탄 동아방송은 개국과 함께 선구적 프로그램과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로 17 7개월간 국민의 소리를 대변했다. 동아방송은 1964 6.3사태 때도 수난을 겪었다. 당시 '앵무새'라는 프로그램이 내란을 선동하고 학생시위를 배후 조종했다는 이유로 6 4일 최창봉 방송부장 등 6명을 구속한 것이다. '앵무새'는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고발성격의 사회비평 방송칼럼이었다. 동아방송은 11 30분 송지헌 아나운서가 고별방송을 전했다.

 

1980 11 30일 고별방송 날 사옥 앞에서 찍은 사진이라 한다. 뒤쪽으로 교보문고가 있는 교보빌딩이 보인다.

 

한편 동양방송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 의해 1964 5월 9동양라디오 개국을 시작으로 1964 12월 7 동양텔레비전(서울 아날로그 7, 부산은 1964 12 12일 아날로그 9번으로 개국), 1966 8월 15에는 동양FM을 개국했다. 1978부터는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준비하기도 했다. 동양방송은 11 30분까지 TBC TV의 마지막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하며 끝을 맺었다. 동양방송 라디오의 마지막은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채웠다.

 

 

언론 통폐합의 명분은 그럴듯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신군부의 강압에 의한 것임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종방 이전인 11 12일 보안사에 끌려간 언론사 사장들은 고압적인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회사포기 각서를 써야만 했다. 한국신문협회와 방송협회의 결의문은 불법성과 강압성을 포장하기 위한 자발적 결의 형태로 발표됐다.

 

당시 보안사 측은 방송국에고별 방송 시 울면 안 된다는 보도 지침까지 내려 보냈다. 그러나 가수 이은하는 TBC 고별프로에서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부르다 울어버렸다. 그 결과는 3개월 출연 정지라는 가혹한 제재를 받았다.

 

 고별 방송을 통해 TBC동양방송의 종말을 지켜보던 모든 시청자들이 참아오던 통한의 울분을 폭발시킨 이은하양의 눈물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 눈물의 결정체였다. "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이 사건을 계기로 이은하양은 상당 기간 동안 방송출연 제재를 받게 된다

 

KBS MBC 2원 체제로 정비된 방송국엔 정부 요원이 상주하며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을 통제했다. 치밀한 언론통제 속에 국민들은 군사정권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