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4일

갑신정변 발발

산풀내음 2016. 10. 25. 22:46

188412 4,

갑신정변 발발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개화당이 일본의 힘을 이용해 청에 의존하려는 민씨 중심의 세력을 물리치고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1884 12 4일 정변을 일으켰다. 이른바 `갑신정변`이었다.

 

 

본래는 이날 열린 우정국의 개국 축하연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안국동 별궁에 방화한 후 척신들이 왕이 있는 궁궐로 급히 돌아갈 때에 이들을 모두 암살할 참이었다. 그러나 방화 계획이 실패하자, 김옥균 등은 즉시 궁궐로 들어가 고종에게 청국군이 변을 일으켰다고 하며, 일본군의 호위를 청해 경우궁으로 국왕을 모셨다. 이들은 이어 궁으로 들어오는 윤태준, 한규직, 이조연, 민영목, 민태호 등 사대당 일파를 살해하고, 다음날인 5일에 각국 공사-영사들에게 신정권의 성립을 통고했고 6일에는 새정부가 앞으로 단행할 개혁정치의 내용을 담은 14개조로 된 `신정강`을 발표했다.

 

1. 청에 잡혀 간 흥선대원군을 곧 돌아오게 하며, 종래 청에 대하여 행하던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

3. 지조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한다.

4. 내시부를 폐지하고 그 중에 재능 있는 자만을 등용한다.

5. 전후 간사한 관리와 탐관오리 가운데 현저한 자를 처벌한다.

6. 각 도의 환상미를 영구히 받지 않는다.

7. 규장각을 폐지한다.

8. 급히 순사를 두어 도둑을 방지한다.

9. 혜상공국을 혁파한다.

10.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자와 옥에 갇혀 있는 자는 그 정상을 참작하여 적당히 형을 감한다.

11. 4영을 합하여 1영으로 하되,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를 급히 설치한다.

12. 모든 재정은 호조에서 통할한다.

13.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

14. 정부 6조 외에 불필요한 관청을 폐지하고 대신과 참찬으로 하여금 이것을 심의 처리하도록 한다.

 

그러나 미처 공포도 하기 전에 김옥균의 필두로 한 급진개화파가 쿠데타의 주역임을 눈치챈 명성황후가 위안스카이에게 원병을 요청해 주둔 중인 1500명의 청국군이 출동하여 12 6일 오후부터 (만으로는 2일째) 창덕궁을 공격하는 바람에 궁궐은 삽시간에 전쟁터가 되었고 수적으로 불리한 급진 개화파 세력은 일본 공사가 사전 약속을 어기고 철수하자 일이 틀렸음을 알고 대거 망명한다. 이 와중에 일본 공사관이 불에 타 조선 정부는 훗날 배상금 문제로 한성 조약을 체결한다. 더 나아가서는 청의 간섭이 심해졌고 일본과의 알력 다툼이 심해져 훗날 청일전쟁의 불씨가 된다결국 이들의 집권은 삼일천하로 끝났고, 김옥균, 박영효 등은 인천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갑신정변의 주역들, 정변 후 ….


 

1) 홍영식 : 정변이 3일 만에 청나라의 개입으로 실패하자, 지도층 대부분이 일본에 망명한 것과는 달리, 박영교(朴泳敎, 박영효의 형)와 함께 국왕을 호위하다 청군에게 살해되었다 아버지 순목도 이 사건으로 인해 자살하였다.

 

2) 김옥균 : 실패 후 일본에 도주, 이와다 슈사쿠로 개명하고 망명 생활을 한다. 일본 정부는 그를 부담스러워 했는지 체포하여 오가사와라 섬, 그리고 홋카이도 섬에 유배 보냈다가 풀려난다. 1894년 당시 주일 공사로 있던 이홍장의 아들의 설득으로 윤치호 등을 대동하고 한·중·일 세 나라가 힘을 합해 서양의 침략에 맞서자는 삼화(三和)주의를 중국의 최고실력자 이홍장에게 설파하기 위해 하루 전 상하이에 도착했던 김옥균은 호텔 동화양행에서 민씨척족의 심복인 이일직에게 매수된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에 의해 암살당한다.

 

3) 박영효 : 이후 골수 친일파가 되었다. 갑오개혁 중 2차 김홍집 내각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일본의 의도로 귀국. 다시 복권되어 정부에서 일하다가 고종을 몰아내려는 반란음모를 꾸미다가 걸려서 다시 일본으로 탈출한다. 경술국치 후에는 후작 작위를 받는 등 부유한 친일파로의 삶을 살았다.

 

4) 서재필 : 동생 서재창을 비롯한 일가와 집안이 전부 몰락하고 가까스로 도망쳤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나중에 독립협회,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미국인 필립 제이슨으로 다시 등장한다. 한인 교포들을 위한 지원도 자주 했다. 하지만 광복 후 귀국 시점에선 한국어도 다 잊어버릴 정도로 미국인이 되어버렸다.

 

5) 서광범 :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곧 박영효, 서재필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 학위와 시민권을 취득하고 연방 하급관료로 일하였다. 갑오개혁으로 잠시 귀국해 김홍집 내각에서 사법개혁을 맡았다. 을미사변 이후 친일파의 입지가 약해지면서 아관 파천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파직되었다. 미국에서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