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16일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Red Devils)’ 탄생

산풀내음 2016. 11. 6. 08:20

1995 12 16,

축구 응원단붉은 악마(Red Devils)’ 탄생

 

 

1995 12 16일 오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붉은 악마(Red Devils)’전설이 시작됐다.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칸타타에서였다. PC통신 하이텔의 10여개축구동호회운영자 10여명은 이날 축구 응원문화의 개선을 위한 회의를 갖고 이른바칸타타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 참가자들은 3040대 직장인과 교사 등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평균 관중 1만명을 넘기지 못하고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한 프로축구의복권(復權)’을 꿈꾸며 모인 동호인 집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국가대표팀 경기마다 300400명 단위로 한국팀 유니폼을 입고 자신들을서포터라고 부르는 단관’(단체관람, 붉은 악마들끼리 사용하는 말임) 모임이 등장했다.

 

1996년 여름 한국중국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3만여명의 관중들 틈새에서 300여명이 될까말까한 일단의무리가 붉은 색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섬처럼 떠있었다. 당시엔붉은 악마란 이름도,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도 없었다. 수만명 관중들 틈에서 이들의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목놓아아리랑애국가를 불렀다. 이날이 PC통신에서 한국팀 응원단을 모은다는 공고를 보고붉은 악마가 처음 국가대표팀 경기에 나간 날이었다.

 

붉은 악마라는 이름은 조직 탄생 1년 반만에 지어졌다. 처음 이름은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였다. 그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한 해 앞둔 1997 5 1일 하이텔 축구동호회를 통해공식적으로 한국 대표팀을 만들겠다는 공지와 함께 명칭을 공모했다. ‘레드 일레븐’ ‘레드 맥스’ ‘꽹과리 부대’ ‘쿨리건’ ‘레드 워리어즈등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름에레드가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이었고, 그 중 19834강에 진출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멕시코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해외언론들이 우리 축구단의 애칭으로 불렀던 Red Devils(붉은 악마)가 호응이 가장 컸다.

 

1997 8붉은 악마가 한국 대표팀 서포터의 공식 이름으로 채택됐다.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치우천왕(蚩尤天王)’ 상은 기원전 2707년부터 109년간 중원의 배달국가를 다스린 인물로 전쟁에서 반드시 이겼다는 전설의 주인공. ‘붉은 악마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국제적 브랜드로 떠올라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2002년 당시에는 그냥 뭐 누구든지 빨간 옷만 입으면 붉은 악마 취급을 해줬지만 이후 K리그 서포터즈와 연대문제와 대형화로 인한 운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2006년 독일월드컵을 전후로 운영진은 해체되었다. 붉은 악마의 엠블럼이나 다름없는 치우천왕기대전 시티즌의 엠블럼을 만든 장부다씨가 1999년 만든 것이다. 중국의 귀면와 문양을 형상화했다는 비판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도 귀면와는 신라시대 유적에서부터 출토되고 있다.

 



 

1995 12 16일 오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붉은 악마(Red Devils)’전설이 시작됐다.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칸타타에서였다. PC통신 하이텔의 10여개축구동호회운영자 10여명은 이날 축구 응원문화의 개선을 위한 회의를 갖고 이른바칸타타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 참가자들은 3040대 직장인과 교사 등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평균 관중 1만명을 넘기지 못하고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한 프로축구의복권(復權)’을 꿈꾸며 모인 동호인 집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국가대표팀 경기마다 300400명 단위로 한국팀 유니폼을 입고 자신들을서포터라고 부르는 단관’(단체관람, 붉은 악마들끼리 사용하는 말임) 모임이 등장했다.

 

1996년 여름 한국중국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3만여명의 관중들 틈새에서 300여명이 될까말까한 일단의무리가 붉은 색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섬처럼 떠있었다. 당시엔붉은 악마란 이름도,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도 없었다. 수만명 관중들 틈에서 이들의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목놓아아리랑애국가를 불렀다. 이날이 PC통신에서 한국팀 응원단을 모은다는 공고를 보고붉은 악마가 처음 국가대표팀 경기에 나간 날이었다.

 

붉은 악마라는 이름은 조직 탄생 1년 반만에 지어졌다. 처음 이름은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였다. 그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한 해 앞둔 1997 5 1일 하이텔 축구동호회를 통해공식적으로 한국 대표팀을 만들겠다는 공지와 함께 명칭을 공모했다. ‘레드 일레븐’ ‘레드 맥스’ ‘꽹과리 부대’ ‘쿨리건’ ‘레드 워리어즈등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름에레드가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이었고, 그 중 19834강에 진출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멕시코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해외언론들이 우리 축구단의 애칭으로 불렀던 Red Devils(붉은 악마)가 호응이 가장 컸다.

 

1997 8붉은 악마가 한국 대표팀 서포터의 공식 이름으로 채택됐다.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치우천왕(蚩尤天王)’ 상은 기원전 2707년부터 109년간 중원의 배달국가를 다스린 인물로 전쟁에서 반드시 이겼다는 전설의 주인공. ‘붉은 악마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국제적 브랜드로 떠올라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2002년 당시에는 그냥 뭐 누구든지 빨간 옷만 입으면 붉은 악마 취급을 해줬지만 이후 K리그 서포터즈와 연대문제와 대형화로 인한 운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2006년 독일월드컵을 전후로 운영진은 해체되었다. 붉은 악마의 엠블럼이나 다름없는 치우천왕기대전 시티즌의 엠블럼을 만든 장부다씨가 1999년 만든 것이다. 중국의 귀면와 문양을 형상화했다는 비판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도 귀면와는 신라시대 유적에서부터 출토되고 있다.

 

흰 옷을 입은 진정한 악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