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2월 16일,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Red Devils)’ 탄생
1995년 12월 16일 오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 악마(Red Devils)’의 ‘전설’이 시작됐다.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 ‘칸타타’에서였다. PC통신 하이텔의 10여개 ‘축구동호회’ 운영자 10여명은 이날 축구 응원문화의 개선을 위한 회의를 갖고 이른바 ‘칸타타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 참가자들은 30∼40대 직장인과 교사 등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평균 관중 1만명을 넘기지 못하고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한 프로축구의 ‘복권(復權)’을 꿈꾸며 모인 동호인 집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국가대표팀 경기마다 300∼400명 단위로 한국팀 유니폼을 입고 자신들을 ‘서포터’라고 부르는 ‘단관’(단체관람, 붉은 악마들끼리 사용하는 말임) 모임이 등장했다.
1996년 여름 한국―중국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3만여명의 관중들 틈새에서 300여명이 될까말까한 일단의 ‘무리’ 가 붉은 색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섬처럼 떠있었다. 당시엔 ‘붉은 악마’ 란 이름도, ‘대∼한민국’ 이라는 구호도 없었다. 수만명 관중들 틈에서 이들의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목놓아 ‘아리랑’ 과 ‘애국가’를 불렀다. 이날이 PC통신에서 한국팀 응원단을 모은다는 공고를 보고 ‘붉은 악마’ 가 처음 국가대표팀 경기에 나간 날이었다.
‘붉은 악마’라는 이름은 조직 탄생 1년 반만에 지어졌다. 처음 이름은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였다. 그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한 해 앞둔 1997년 5월 1일 하이텔 축구동호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한국 대표팀을 만들겠다’는 공지와 함께 명칭을 공모했다. ‘레드 일레븐’ ‘레드 맥스’ ‘꽹과리 부대’ ‘쿨리건’ ‘레드 워리어즈’ 등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름에 ‘레드’가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이었고, 그 중 1983년 4강에 진출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멕시코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해외언론들이 우리 축구단의 애칭으로 불렀던 Red Devils(붉은 악마)가 호응이 가장 컸다.
1997년 8월 ‘붉은 악마’가 한국 대표팀 서포터의 공식 이름으로 채택됐다.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치우천왕(蚩尤天王)’ 상은 기원전 2707년부터 109년간 중원의 배달국가를 다스린 인물로 전쟁에서 반드시 이겼다는 전설의 주인공. ‘붉은 악마’는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국제적 브랜드로 떠올라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2002년 당시에는 그냥 뭐 누구든지 빨간 옷만 입으면 붉은 악마 취급을 해줬지만 이후 K리그 서포터즈와 연대문제와 대형화로 인한 운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2006년 독일월드컵을 전후로 운영진은 해체되었다. 붉은 악마의 엠블럼이나 다름없는 치우천왕기는 대전 시티즌의 엠블럼을 만든 장부다씨가 1999년 만든 것이다. 중국의 귀면와 문양을 형상화했다는 비판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도 귀면와는 신라시대 유적에서부터 출토되고 있다.
1995년 12월 16일 오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 악마(Red Devils)’의 ‘전설’이 시작됐다.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 ‘칸타타’에서였다. PC통신 하이텔의 10여개 ‘축구동호회’ 운영자 10여명은 이날 축구 응원문화의 개선을 위한 회의를 갖고 이른바 ‘칸타타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 참가자들은 30∼40대 직장인과 교사 등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평균 관중 1만명을 넘기지 못하고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한 프로축구의 ‘복권(復權)’을 꿈꾸며 모인 동호인 집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국가대표팀 경기마다 300∼400명 단위로 한국팀 유니폼을 입고 자신들을 ‘서포터’라고 부르는 ‘단관’(단체관람, 붉은 악마들끼리 사용하는 말임) 모임이 등장했다.
1996년 여름 한국―중국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3만여명의 관중들 틈새에서 300여명이 될까말까한 일단의 ‘무리’ 가 붉은 색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섬처럼 떠있었다. 당시엔 ‘붉은 악마’ 란 이름도, ‘대∼한민국’ 이라는 구호도 없었다. 수만명 관중들 틈에서 이들의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목놓아 ‘아리랑’ 과 ‘애국가’를 불렀다. 이날이 PC통신에서 한국팀 응원단을 모은다는 공고를 보고 ‘붉은 악마’ 가 처음 국가대표팀 경기에 나간 날이었다.
‘붉은 악마’라는 이름은 조직 탄생 1년 반만에 지어졌다. 처음 이름은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였다. 그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한 해 앞둔 1997년 5월 1일 하이텔 축구동호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한국 대표팀을 만들겠다’는 공지와 함께 명칭을 공모했다. ‘레드 일레븐’ ‘레드 맥스’ ‘꽹과리 부대’ ‘쿨리건’ ‘레드 워리어즈’ 등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름에 ‘레드’가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이었고, 그 중 1983년 4강에 진출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멕시코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해외언론들이 우리 축구단의 애칭으로 불렀던 Red Devils(붉은 악마)가 호응이 가장 컸다.
1997년 8월 ‘붉은 악마’가 한국 대표팀 서포터의 공식 이름으로 채택됐다.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치우천왕(蚩尤天王)’ 상은 기원전 2707년부터 109년간 중원의 배달국가를 다스린 인물로 전쟁에서 반드시 이겼다는 전설의 주인공. ‘붉은 악마’는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국제적 브랜드로 떠올라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2002년 당시에는 그냥 뭐 누구든지 빨간 옷만 입으면 붉은 악마 취급을 해줬지만 이후 K리그 서포터즈와 연대문제와 대형화로 인한 운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2006년 독일월드컵을 전후로 운영진은 해체되었다. 붉은 악마의 엠블럼이나 다름없는 치우천왕기는 대전 시티즌의 엠블럼을 만든 장부다씨가 1999년 만든 것이다. 중국의 귀면와 문양을 형상화했다는 비판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도 귀면와는 신라시대 유적에서부터 출토되고 있다.
흰 옷을 입은 진정한 악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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