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27일

소련, 아프가니스탄 침공(Soviet–Afghan War)

산풀내음 2016. 11. 13. 10:06

1979 12 27,

소련, 아프가니스탄 침공(Soviet–Afghan War)

 

19세기 무렵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놓고 제정 러시아와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1838년을 시작으로 3번에 걸쳐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치런다. 먼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1838년 아프간에 2만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아프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도스트 무하마드 왕을 몰아낸 후 영국은 자신들의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부족들의 피의 보복으로 영국의 관리와 군인들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결국 1842 1,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하고 인도로 철수를 개시했다. 하지만 침략군의 퇴로는 피비린내 나는 보복의 연속이었다. 험준한 산악의 고개마다 매복한 아프간인들의 기습으로 철수 길에 오른 영국군인 4천명과 민간인 1만 명 중 살아서 목적지인 ‘잘랄라바드’에 도착한 사람은 단 40여 명에 불과했다.


이후 영국은 1878년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고 과거의 역사는 반복되었다. 그리고 1918년 영국과 아프가니스탄 간에 다시 전쟁이 벌어졌고 1878년 당시 빼앗겼던 외교권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19세기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

 

한 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가졌던 아프가니스탄도 1973 모하메드 자히르 샤(Mohammed Zahir Shah) 국왕의 사촌인 다우드 칸(Mohammed Daoud Khan) 수상이 쿠테타를 일으켜 국왕을 축출하여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면서 다시 혼란의 시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새롭게 들어선 정부는 낙후된 아프가니스탄을 근대화하는 개혁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78 4, 소련에서 교육을 받은 하피줄라 아민, 바브락 카르말,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 등 군 장교들이 주도한 쿠테타로 전복되었고 이후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Nur Muhammad Taraki, 1917-1979)를 대통령으로 하는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들은 아프간 민주 공화국(DPA)을 선포하고 급진적인 사회주의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곧 전 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한다. 토지개혁, 여성정책, 이슬람에 대한 사회주의적인 접근은 이슬람 지도자들과 부족원로들을 비롯한 전통적 지도층들의 분노를 샀고, 이들에 의해 곧 ‘지하드’(성전)가 선포되었다.


Daoud Khan with Mohammed Asif Safi and other senior officers of the military of Afghanistan.

 

USSR Foreign Minister Andrei Gromyko, left, Nur Muhammad Taraki, and Leonid Brezhnev in 1979.

 

아프간의 정국은 혼란에 빠졌고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 좌익정권은 소련에 지원을 요청한다. 한편 1979 3월 아프간 육군 17사단이 반란을 일으켜 사단에 배치되었던 소련군 고문단 장교들과 그 가족들 40여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소련 침공의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되어버렷다.

또 한편 당시 타라키 대통령과 갈등을 빗었던 하피줄란 아민(Hafizullah Amin, 1929-1979)이 혼란한 정국을 틈타 1979 9 16일 쿠데타를 일으켜 타라키를 살해하고 새로운 대통령에 오른다. 그는 이후 3개월 동안 1 8000명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Hafzullah Amin (right) and Adel Bishtawi (left, Jouralist)

 

이런 상황에서 소련은 아프간의 혼란을 틈타 그리고 자국민의 희생을 빌미삼아 비밀리에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획한다. 마침내 소련은 1979 12 13일 침공을 시작하여 12 27일 대통령궁을 습격해 아민을 사살하고 아민 정권을 붕괴시켰다.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대사였던 바브락 카르말(Babrak Karmal, 1929-1996)로 하여금 친소 정부를 수립하게 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었다.

 





 

소련의 침공 이후 수도 카불에서는 상점 철시·학생 시위 형태로 국민적 항전이 거세지고, 이슬람 저항 세력 6개파는 1980 1월 아프가니스탄 해방 이슬람 연맹을 결성, 이슬람 형제국의 자금 지원 아래 전국에서 소련군과 친소정부군에 대한 조직적인 무장항전을 전개하였다. 여기에 아민 정권 당시의 정부군 중 상당수가 이슬람 저항 세력에 합세함으로써 '이슬람 연맹'의 전투력 강화에 기여했다. 이런 가운데 카불 정권 내부에도 권력투쟁이 일으나 카르말이 실각하고 하마드 나지불라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고르바초프는 대서방에 협상을 제의하였고 1988 4월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1989 2 15일로 소련군은 완전 철수했다. 이로써 아프가니스탄은 카불의 나지불라 정권과 무자헤딘 사이의 내전으로 환원되었으며 1992 4월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되고 무자헤딘 지도자 랍바니를 수반으로 하는 회교정권이 수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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