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28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대의원 전원 찬성으로 채택

산풀내음 2016. 11. 14. 21:21

1972 12 28,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5 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대의원 전원 찬성으로 채택

 

김일성 수상이 1948 9 10,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회의에서 정부 정강을 발표하는 모습

 

1972 12 28, 북한은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5 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헌법을 대의원 전원 찬성으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정권수립 이후 4반세기 동안 국가권력구조의 골격으로 유지돼온 내각제 형태의 수상제가 폐기되고 대통령 중심제와 유사한 주석제가 새로 출범했다. 공교롭게도 하루전인 27일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투표(72.11.21)를 통해 확정된 유신헌법을 공포, 4공화국 유신체제를 정식 발족시켰다.

 

남북한의 정치체제 변화가 연이어 이루어진 것이다. 유신체제가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를, 북한의 주석제가 조국통일과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각각 명분으로 내세운 점도 흥미롭다.

 

북한이 1970년대 초 헌법을 개정해 주석제를 골간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권력구조를 탄생시킨 것은 1950년대 이후 권력투쟁을 겪으면서 부쩍 향상된 김일성의 지위와 역할을 반영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1950년대 초 남로당계 숙청을 시작으로 8월 종파사건과 1960년대 갑산파 제거, 1969년 군부파 축출로 이어지는 일련의 권력투쟁을 통해 유일체제를 구축했으며 1970 11월 제5차 당대회에서 이를 공식화했다.

 

주석제는 유일사상체계, 수령제를 제도화하고 법적으로 고착화하는 의미를 띠는 것으로, 김정일 후계체제를 등장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도 내포했다. 김정일 후계구도는 김일성이 회갑을 맞는 1972년을 기점으로 가시화되어 1974 2월 후계지명으로 구체화됐는데, 주석제가 나옴으로써 김일성은 국가를 맡고 김정일은 당을 매개로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역할분담이 가능해졌다. 대외적으로 보면 1969년 닉슨독트린등의 국제적인 화해분위기, 1972 2월 닉슨-주은래의 만남과 상해 코뮈니케로 상징되는 미-중 관계개선, -일접근, 남북대화 시작 등 일련의 국내외정세 변화와 그로부터 예상되는 외풍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내부 체제정비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었다.

 

북한은 194898일 헌법을 제정(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 회의)한 이후 여러 차례 헌법을 개정하였으나, 개정 내용 모두를 공식적으로 공개하고 있지는 않음.

헌법 개정 관련, 북한이 공식 매체를 통해 공개한 주요 개정내용은 다음과 같음.

 

1) 1972. 12. 28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 회의) : 주석제 신설, ‘주체사상, 청산리정신’ 등을 규정

2) 1998. 9. 5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 :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로 개편, 국가주석 폐지, 국방위원장이 ‘일체 무력을 지휘 통솔한다’고 규정

3) 2012. 4. 13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 :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 국방위 제1위원장 직제 신설

4) 2013. 4. 1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7차 회의) : 서문에 ‘금수산 태양궁전’ 내용 추가, 12년 의무교육제’ 반영

 

※ 1992. 4. 9(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3차 회의), 2009. 4. 9(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 2010. 4. 9(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2차 회의)에는 헌법 개정사실만을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