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30일

고하 송진우 피살 사건 발생

산풀내음 2016. 11. 15. 19:24

1945 12 30,

고하 송진우 피살 사건 발생

 

송진우 피살 사건은 1945 12월 30 새벽 6한국민주당 당수 송진우서울 원서동 자택에서 한현우 등 자객들의 피습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여 수석 총무가 된 송진우는 당 조직을 확대했으며, 군정에 협력했고, 그리고 망명 정객들과의 연계를 통해 정략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1945 12 31일자 동아일보. 송진우 암살을 보도

 

그러나 1945 12월 27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과 발표된 조선의 미,소 양측의 5개년 신탁통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김구가 이끄는 임시정부와 견해 차이를 나타냄으로써 마찰을 빚었고, 이로 인해 송진우가 신탁통치를 지지한다고 생각한 한현우(당시 34)와 유근배(21) 두 사람에 의해 피격 암살당하고 말았다.

하지는 송진우 암살의 배후로 김구를 지목하였다. 그밖에 장택상도 송진우의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하였고, 조병옥김구를 송진우의 암살 배후로 지목했다.

 

고하 송진우(1890-1945) 189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1906년 창평의 영학숙에서 인촌 김성수 선생 등과 함께 신학문을 배웠고 일본에 유학, 1915년에 명치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인촌이 중앙학교를 인수하자 교장에 취임,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으며 3·1운동 때는 48인의 한 사람으로 체포돼 1년 반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2 3 18일 전 중앙학교 교장인 고하 송진우 선생(왼쪽에서 세 번째)이 중앙고등보통학교 제1회 졸업식에서 졸업생 앞에 앉아 있다. 설립자 인촌 김성수 선생과 최두선 전 교장(왼쪽부터), 현상윤 교장(오른쪽)의 모습도 보인다. 고하는 중앙학교 숙직실에서 민족 대표들과 3·1운동을 준비했다. 동아일보DB

 

1921년 동아일보사가 주식회사로 개편되자 3대 사장으로 취임, 1940 8 10일 동아일보가 강제폐간 될 때까지 20여년 간 사장 고문 주필 등을 역임했다. 8·15광복 후 여운형 등이 주동이 된 건국준비위원회와 맞서 우익세력을 규합, 한국민주당을 결성하고 수석총무가 됐다. 미군정에 적극 협력하면서 뒤이어 환국한 이승만 및 임시정부 지도자들과 함께 정부수립에 힘쓰는 한편 속간된동아일보사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