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월/1월 15일

남조선 국방경비대 창설

산풀내음 2016. 11. 24. 06:13

19461 15,

남조선 국방경비대 창설

 

1946 1 15일 현재의 육사(서울시 태능)자리에 우리나라 육군의 전신인남조선 국방경비대1연대 제1대대가 설치됐다. 1907 8 1일 대한제국 국군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후 39년 만의 일이었다.

 

 

1945 8 15, 꿈에도 그리던 조국광복을 맞이했고 고국으로 환국한 광복군은 지난 날의 나라 없는 민족의 쓰라린 체험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국군 준비대와 학도병 중심의학도동맹 12개 자발적 군사조직을 창설, 창군운동을 전개했다. 이것들 이외에도 광복 후 사설군사단체 혹은 유사군사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 1945 11월에는 그 수가 무려 60여 개가 되었다.

그래서 같은 해 11월 이들 군사조직 모두 미군정의 법령28호에 의해 해산되기에 이른다. 이유인 즉, ‘미 군정당국에 의해 조직되지 않은 일체의 경찰ㆍ군사조직을 금지한다는 당시 법령 때문이었다.

 

이에 미 군정당국은 친미성향의 고급간부를 국방경비대에 배치하기 위해 국방경비대 창설 1개월 전인 1945 125일 군사영어학교(Military Language School)를 설립했다. 개교식에는 미군정장관 '하지' 중장과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이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서울시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학의 건물을 빌려 설립된 군사영어학교는 애초에 '기초적인 군사영어 해독이 가능한 미군 지휘관의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시설이었다.

 

당초 미 군정은 군사영어학교의 정원을 60명으로 예정하여 광복군 출신 20, 일본군 출신 20, 만주군 출신 20명으로 할당하여 학생을 모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에 있던 광복군은 자신들이 개선하여 건군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군사영어학교에 참가하는 것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 때문에 군사영어학교 학생의 대부분은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들이었다.

 

군사영어학교는 이듬 해인 1946 1 15일 국군의 전신인 '남조선 국방 경비대'가 창설되면서 지금의 육군사관학교가 자리한 태릉으로 이전하여 4월말 폐교할 때까지 모두 110명의 장교를 배출하였다. 대신 5 1일 이를 발전시킨 조선 경비 사관학교가 개교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이다.

 



조선경비대가 1948 8 15일 서울 시내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경축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초기 졸업생 가운데 21명은 40여 일간의 군사교육을 받고 1946 1 15일 대한민국 국군 첫 장교로 부임했다. 이형근, 채병덕, 유재흥, 장석윤, 정일권이 군번 1번부터 5번까지를 부여 받은 영광의 주인공들이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들은 이전 군 경력에 따라 대령에서 소위까지 계급을 받아 임관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새롭게 창설된 국방 경비대의 기간요원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배출한 110명의 장교 중 78명은 군장성에, 13명은 참모총장에, 7명은 합참의장에까지 올랐다.

 

남조선 국방 경비대 초대 총사령관으로 존 마셜(John T. Marshall) 미국 육군 중령, 보좌관으로 원용덕 소령이 임명된 국방경비대는 주로 군사영어학교 출신들로 장교를 채운 뒤 병사 225명을 선발하겠다고 공고했다. 그러자 1,000여명이 지원해 성황을 이뤘다.

국방경비대 창설은 제1연대 창설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했으나 실제로 처음 창설된 부대는 A중대(중대장 채병덕) 1개 중대뿐이었다. 187명으로 구성된 A중대는 1 17일 편성이 완료되었다. 뒤이어 본부중대(중대장 장석윤) B중대(중대장 정일권)가 편성되고 3개 중대를 지휘할 1대대장에는 A중대장이던 채병덕이 임명되었다.

 

1대대 발족 후 제2대대와 제3대대까지 편성한 국방경비대가 제1연대 편성을 완료한 것은 1946 9 18일이었다. 뒤이어 2연대(대전), 3연대(전북 이리), 4연대(광주), 5연대(부산), 6연대(대구), 7연대(충북 청주), 8연대(강원 춘천) 7개 연대가 각 도에 창설되었다. 제주도의 9연대는 제주가 1946 8월 도로 승격된 후 11월에 창설 작업을 시작해 1948 7월에 완료했다.

 

말이 연대 창설이지 병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처음에는 200명 규모의 1개 중대를 먼저 편성하고 현지 모병으로 인원이 차는 대로 대대에서 연대로 확대 개편했다. 국방경비대는 이들 각 도의 경비대를 총괄지휘하기 위한 경비대총사령부를 설치해 송호근 대령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남조선 국방경비대는 1946 6 15()조선경비대로 개칭됐고,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1948 9 1일 국군으로 편입됐다가 9 5일 육군으로 개칭됐다. 이후 조선해안경비대를 개편한 해군과 육군항공부대에서 출발한 공군이 국군에 통합됨으로써 3군 체제가 갖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