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월/1월 20일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산풀내음 2016. 11. 27. 09:25

19231 20,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국권상실 후 일제의 경제침략은 더욱 거세어 일본자본에 의해 우리 민족의 생활권은 잠식되어갔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민족의 자각을 촉구해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경제권을 수호하고자 하였다.

 

경제자립을 위한 민족적 자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3·1운동 직후부터이며, 1920년대 초부터 전국적인 규모로 전개되었다. 1920년 봄 평양의 민족지도자들은 민족기업의 건설과 육성을 촉구하는 조직체 결성을 논의하였고, 19207월에 발기모임을 가진 후 1922 620일에 조만식을 회장으로 한 조선물산장려회가 평양에서 창립됐다. 평양의 조선물산장려회는 장문의 취지서를 발표하고 당면 실천과제로서 경제계의 진흥, 사회의 발전, 실업자의 구제책, 국산품 애용, 근검 풍토, 실천성의 양성을 내세웠다.

 

조만식 선생 (1883-1950)

평양 조선물산장려회 선전표어와 선전포스트

 

이와 같이 평양에서 조선물산장려를 위한 조직체가 결성되자, 서울의 조선청년회연합회에서도 이 운동에 호응해 1922년 말부터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 일간지를 통해 전국의 민중으로부터 조선물산장려 표어를 모집했으며,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는 지방순회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청년회의 활동으로 물산장려운동의 기풍은 점차 민중 속에 확산되었다.

 


조선물산장려회 정기 대회

 

마침내 1923 1 20일 서울 낙원동 협성학교(協成學校) 강당에서 조선물산장려회의 전국적 조직체가 탄생되었다. 창립총회에서 이사 20명을 선출했는데, 독립운동가, 교육자, 종교인, 기업인 등 각계각층의 민족지도자가 망라되었다. 이 회의에서 회의 조직과 활동 방향이 정해졌다.

 

활동 지침으로, 첫째 조선인의 산업적 지능을 계발, 단련해 실업에 입각하게 하는 산업 장려, 둘째 조선인의 산품을 애용, 무육(撫育)해 조선인의 산업을 융성하게 하는 애용 장려, 셋째 조선인의 생활 및 기타에 관해 경제적으로 건설 또는 개선하기 위해 일반 사항을 조사, 강구(講究)해 그 실현을 지도, 관철하는 경제적 지도 등의 목표를 정하였다.

 

창립 후 첫 계몽활동으로서 그 해 2 3일 서울 천도교당에서 대() 민중강연회를 개최하였고, 청중 2,000여 명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이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 강연회에 이어 조선물산장려회는 전국적 계몽활동을 계획하고, 또 구정을 기해 전국적으로 가두행렬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가두행렬에서는 조선 8도의 특산 포()로 기를 만들어 앞세우기로 하였다.

그러나 구정을 기해 거행하기로 한 가두행렬은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또 전국을 순회하는 계몽강연도 일제의 방해로 지방에 따라서 강연 도중 연사의 발언이 중지되거나 붙잡히기도 했으나 초기에는 대체로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창립초기에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계속된 보도와 조선청년연합회가 현상모집한 표어가 크게 기여했다. ‘내 살림은 내 것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등의 표어가 전국적으로 전파되면서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켜, 길거리에서는물산장려를 외쳐댔고 학교에서는 국산교복 착용운동이 일어났다. 기생들까지 동참했다.

 

이와 같이 서울에 전국적 조직체가 결성된 뒤 강연회, 전단살포 등에 의한 선전, 계몽 활동이 전개되면서 각 지방에서도 지방분회를 결성하였다. 평양, 대구, 부산, 광주, 함흥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소읍에까지도 지방분회를 설립했는데, 그 호응도는 오히려 더 열렬하였다.

 

그러나 이를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보는 일제의 탄압과, 토산품값 급등으로 기업과 상인들만 살찌우고 일반 서민들은 더욱 궁핍해지는 예상치 못한 결과도 나타났다. 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회주의자들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생활향상과는 무관하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특별한 활동 없이 명맥만 이어가다가 1937∼1940년 경에 해체됐다.

 

 

[ 조선물산장려회의 궐기문 ]

 

내 살림 내 것으로 보아라

우리의 먹고 입고 쓰는 것이 다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위태한 일인 줄을 오늘에야 우리는 깨달았다.

피가 있고 눈물이 있는 형제 자매들아.

우리가 서로 붙잡고 서로 의지하며 살고서 볼일이다.

입어라 조선 사람이 짠 것을

먹어라 조선 사람이 만든 것을

써라 조선 사람이 지은 것을

조선 사람, 조선 것.

 

조선물산장려회의 선전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