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월/1월 20일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사망

산풀내음 2016. 11. 27. 09:33

19931 20,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사망

 

 

`로마의 휴일`에서 청순한 모습으로 전세계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1993 1 20일 장암과의 오랜 투병 끝에 63세를 일기로 스위스 로잔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유니세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29 3 4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아일랜드계 영국인 은행가와 네덜란드 귀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오드리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부모는 1935년 이혼을 하였고 나치의 추종자였던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다. 이후 오드리가 영화배우로 성공한 이후에 아일랜드에 있는 요양원에서 다시 만난 게 전부라고 한다그리고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네덜란드로 피신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강제적인 칩거 생활로 인해 오드리는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천식, 황달, 관절염, 자궁내막염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발레는 포기하지 않았다.

 


 

1948년에 런던으로 이사한 뒤에도 발레는 계속하였고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에 코르스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53`로마의 휴일`에서 깜찍한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과 함께 `할리우드의 요정`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헵번은 이후 `사브리나`(1954) `전쟁과 평화`(1956)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마이 페어 레이디`(1964) `어두워질 때까지`(1967) 등을 통해 1950∼60년대 최고 인기여배우로 활약했다.

 




 

영화계의 성공은 눈부셨지만, 오드리가 늘 간절하게 원했던 평범한 가족생활은 이루지 못했다. 세 번의 유산을 겪든 그녀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힘들게 첫아들을 얻었지만 그녀는 곧 이혼을 했다. 그리고 2년 뒤에 8살 연하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였고 아들도 생겼다. 그러나 11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다시 이혼을 하게 되었다.

 

Mel Ferrer, September 25, 1954

Andrea Dotti, January 18, 1969

 

26편의 작품을 통해 티없이 맑고 순진한 여성상을 표출해 온 헵번은 1960년대 이후 이따금 단역으로 스크린에 모습을 비춘 것을 제외하고는 은막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두 아들을 키우는 것과 함께 1988년 유니세프의 친선대사 제의를 흔쾌히 수락해 인도적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말년을 보냈다.

 

특히 말년의 4년간을 국제아동기금 순회대사로 세계 각지를 돌며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아동들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헌신적으로 전개,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1992 9월 투병 중에도 헵번은 기아와 질병의 땅 소말리아를 직접 방문, 전세계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호소하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한 기자가 그녀에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묻자, 오드리 헵번은 이렇게 답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 역시 유니세프이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베풀 차례입니다. 그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받은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