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4일

록히드 사건 (Lockheed bribery scandals)

산풀내음 2016. 12. 7. 22:49

19762 4,

록히드 사건 (Lockheed bribery scandals)

 

1976 2 4, 미상원외교위원회 다국적기업소위원회에서 미 항공기 제작사인 록히드의 회계담당자가 신형 ‘트라이스타-L1011형’의 판촉을 위해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총 1,600만달러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증언했다.

 

Delta Air Lines Lockheed L-1011 TriStar 250

 

이것이 발단이 되어 일본의 여당은 전후 최대의 혼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4월 록히드사건에 대한 미국측의 미공개 자료가 일본측에 전달된 이후 6월부터 마루베니, 젠니구 등의 간부가 계속 체포되고, 7 27일에는 전() 수상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 체포되었다.

 

다나카 전 수상이 7 27일 체포되고 있다.

Japanese protesters march on governmental buildings in protest of the Lockheed Martin bribery scandal.

 

검찰은 다나카 전 총리가 총리 재직 중이던 1972년 자택에서 일본 항공사인 젠니쿠(全日空)가 록히드 비행기를 선정, 구입토록 운수상에게 지시했고 그 성공 보수로 현금 5억엔을 약속받았다는 점을 들어 그를 기소했다. 이어 다나카 전 총리가 비서를 시켜 4차례에 걸쳐 5억엔을 록히드측으로부터 건네받았다는 점도 기소장에 적시했다.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결국 정계에서 다나카 전 총리를 비롯해 현역 정치인 3명과 젠니쿠 회장 등 대기업 간부 등 16명을 형사소추했다.

 

이것은 정치인, 고급관료, 대기업이 제각기 이익을 챙기려는 정경유착관계에서 발생한 구조적 오직(汚職)사건으로, ‘청렴한 미키를 자신의 이미지로 내세우고 있던 수상 미키 다케오[三木武夫]도 여론을 배경으로 사건규명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자민당 간부들 사이에서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 정치, 경제구조 그 자체의 부패가 폭로되어 보수정치체제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었고, 미키를 수상직에서 끌어내리려는 정치공작도 시도되었다.

 

이에 대하여 미키는 여론의 지지를 기반으로 반대파 각료를 파면하고 국회해산이라는 강경한 입장으로 대응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 사건으로 자민당 내 고노, 요헤이 등 6명의 의원이 금권정치를 비판하고 탈당하여신자유클럽을 결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자민당과 내각을 지배한 전 수상 다나카의 신화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다나카 전 총리는 1, 2심에서 징역 4, 추징금 5억엔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수사 착수 6개월 만에 전직 총리 구속이라는 전대미문의 실적을 올린 이 사건의 재판은 무려 19년을 끌었다. 1995 2월에서야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내려져 다나카 전 총리 등 11명에게 유죄가확정됐다. 다나카 전 총리는 그러나 상고 중인 1993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