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16일

경성방송국, 국내 첫 라디오 방송 송출

산풀내음 2016. 12. 17. 16:48

19272 16,

경성방송국, 국내 첫 라디오 방송 송출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 1927 2 16일 오후 1,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학교 자리였다. 호출 부호는 JODK, 호출 명칭은 경성방송국, 주파수 690, 출력 1㎾였다. 방송 장비로는 영국 마프코니사가 제작한 6Q형 방송송신기와 15㎾급 변압기 4, 14㎾급 충전용 전동발전기 3, 6㎾급 송신기용 전동 교류발전기 2대 등이었다. 호출 부호 즉 ‘콜 사인’JODK JO가 일본 고유의 콜사인이고 DK가‘ 일본의 네 번째 방송국 (1925 3 22일 도쿄 AK, 7 15일 나고야 CK, 1926 12 1일 오사카 BK)’을 뜻한다.

 


 

방송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총 17시간이었지만 장비부족과 인력문제로 방송은 늘 불규칙했다. 개국초기의 방송언어는 한일 양국어 편성비율이 3 7이었다가 1933년 조선어 방송인 연희방송소가 개소된 뒤로 일본어 방송을 제1방송, 한국어 방송을 제2방송으로 하는 이중방송으로 진행했다.

 

1926 11 30일에 개국한 경성방송국은 한국인 직원이 3명 포함돼 있었는데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 최승일이 '프로듀서 1'였고, 그의 부인 마현경이 '아나운서 1'였다. 정규 라디오 방송은 미국, 영구, 프랑스,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였지만 국권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의미없는 기록으로 남았다.

 

당시 라디오의 청취료는 월 2원으로 쌀 한 가마니 가격이 5원이었음을 생각하면 꽤 고가의 청취료였다. 수신기, 즉 라디오 역시 고가품으로 1~2명이 청취 가능한 수신이 약한 수신기는 10~15, 가족용 수신기는 100, 고급수신기는 4,000원을 호가했다.

 

일본 정부는 1923년 관동대지진 사건을 계기로 조선인의 집단행동을 통제하고 민족의 정신개조를 통한 황국신민화를 목적으로 경성방송국을 개국하였다. 1926년 말에 개국되었지만 1924년부터 국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방송설립을 위해 서울 우미관에서 공개 시험방송을 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경성방송국 개국 이후에도 여러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총독부는 이를 불허했다. 경성방송국은 사실상 일제 강점기 독점적인 지위를 누린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이다.

 

경성방송국 1Kw송신기 영국 마르코니제 6Q

1939 8 27일 방송극 녹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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