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19일

키프로스(Cyprus) 독립협정 체결

산풀내음 2016. 12. 18. 17:21

19592 19,

키프로스(Cyprus) 독립협정 체결

 

그리스와 터키는 기독교(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로 종교가 판이한데다 역사적으로도 오랜 세월 반목으로 일관해 왔다. 터키의 오스만 투르크는 15세기부터 400년간 그리스를 지배했고, 발칸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리스가 터키를 공격해 영토를 할양받았다. 20세기에 접어들자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함께 살고 있는 키프로스 섬이 양국에 새로운 분쟁 불씨가 되었다.

 

지중해 동쪽, 그러니까 중동 앞바다에 우리나라 경기도 면적보다 훨씬 작은 섬나라가 키프로스(Cyprus, 혹은 Kypros)는 그리스계와 터키계 2개 민족으로 형성된 1개 국가로 국민들의 반목은 이미 고질화된 상태의 국가였다. 분리를 원하는 터키계 국민들에 비해 그리스계는 그리스와의 병합을 갈망해 왔다. 전체 인구 중 80%가 그리스계, 20%가 터키계다.

 

 

제1 세계 대전이 터지고 오스만 제국이 동맹국편에 서자 영국은 키프로스를 병합하였다. 1923로잔 조약으로 신생 터키 공화국은 키프로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고, 1925년 키프로스는 영국의 왕령식민지(Crown colony)로 선언되었다.

 

1955키프로스 전사 민족단(EOKA)이 창설되어 무장 투쟁으로 독립하여 그리스와 통합하고자 하였다. 같은 시기에 이에 맞서 터키계 키프로스인들이 터키 저항단(TMT)을 조직하여 국가 분할을 요구하였다. 결국 섬을 둘러싼 그리스, 터키의 대립으로 양국간의 감정이 점점 격화되자 서방국가 반공군사동맹의 분열을 두려워한 영국과 미국이 중재에 나서, 1959 2월 마침내 취리히에서 양국 수뇌의 비밀회담이 실현됐다. 뒤이어 양국에 영국·미국 대표를 포함한 회의가 2 19일 런던에서 개최되어, 런던 협정으로 불리는 키프로스 독립협정이 성립됐다. 이 협정으로 1960 8월 키프로스는 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12 14일에는 마카리오스(Makarios III) 주교가 터키계 경쟁상대를 물리치고 키프로스 대통령에 선출됐다.

 

초대 대통령 마르카리오스 대주교

 

이후에도 내부분쟁이 지속되다가 결국 1974 그리스 군사 정권의 지원을 받은 그리스계 키프로스 민족주의자들이 키프로스 섬을 그리스에 병합하고자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에 터키프로스를 침공하여 섬의 37%를 점령하였다. 터키는 키프로스에 군사 개입을 하면서 미국북대서양 조약기구의 비밀 지원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 천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으며, 키프로스 섬 북부에 북키프로스 정부가 수립되어 남북이 분단되었다. 지금은 4개의 분단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1974년 내전

 

남쪽 그리스계 키프로스 공화국은 유엔에 가입한 독립국이지만, 북쪽 터키계 키프로스는 터키만 국가로 승인했다. 터키계 키프로스엔 많은 터키군이 주둔해 있고 터키화폐 TL(Turkish Lira)이 사용되고 있다.

 

터키시 키프로스에서 터키 본토까지는 불과 60km, 보트로 3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그리스까지는 700km나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리스 인구는 700만명인 데 비해 터키 인구는 6000만명으로 군사력에서도 비교가 안 된다.

 

북키프로스의 카레니아

남부의 트루도스 마시프

남서부 해안도시 파포스

키프로스의 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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