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2월 28일,
대한항공공사(KAL), 한진상사에 불하
1960년대 중반 월남전이 확대되자 전장에는 '전쟁특수'가 따른다는 것을 한진상사는 간파했다. 전쟁을 수행하려면 전략물자의 하역과 수송용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한진은 한국회사로는 가장 먼저 월남에 뛰어 들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하역능력과 운송 서비스에 신용과 자신을 얻게 되자 미 국방부로부터 더 많은 용역을 받게 되었다.
필요한 근로자들의 신속한 수송을 위해 한진은 당시 120인승 비행기를 구입해 서울과 월남을 운항했다. 공기업인 대한항공공사의 항공기가 홍콩까진 운항했으나 결항이 너무 잦아 인력 교대와 수급을 제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공사(大韓航空公社)는 항공운송사업과 이에 부대하는 사업을 경영함으로써 민간항공의 진흥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1946년 3월 1일 설립된 대한민국 교통부 산하 최초의 국영항공사였다. 그러나 항공공사의 적자 누적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고민 끝에 자본과 경험이 축적된 한진에 맡기기로 결정하고 대한항공공사(KAL)를 10년분할 상환조건으로 14억5천3백만원에 한진상사에 정식 불하했다.
대한항공공사 취항식
대한항공공사의 더글러스 DC-3(현재는 인하대학교에 보존)
1963년 대한항공공사 스튜어디스들
KAL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던 산업은행은 전격적으로 KAL의 정부주식 1백45만3천주(전체의 96.3%)를 수의계약으로 한진상사에 매각, 1969년 2월 28일 신문회관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정식으로 운영권을 넘겼다. 이리하여 대한항공공사는 당시 공기업 중 가장 먼저 한진그룹에 민영화 되었다.
1969년 3월 김포공항에서 열린 대한항공공사 인수식 모습. 조중훈 회장은 당시 누적 적자 27억원 규모의 부실 국영기업이었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 주식회사 '대한항공'을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민항시대를 열었다.
KAL 주주총회에서 장성환 사장 등 전임원의 사표를 수리하고 새 이사진을 선출했는데 사장과 부사장은 대한항공공사법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키로 돼있어 이날 선정하지는 않았으나 회장에는 한진재벌의 총수 조중훈씨가, 사장엔 전명섭씨가, 부사장에는 한진상무 조중건씨가 내정되어 있었다.
당시 보유 항공기는 8대의 구형 프로펠러기였고, 채무는 약 27억원이나 되었다. 이에 관련해 한진은 KAL 운영확장을 위해 4발제트 여객기 2대와 DC-9 1대 등 신형여객기를 도입, 본격적인 항공사업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1969년 한진그룹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이후, 1971년 우리나라 최초의 태평양 횡단 노선인 서울-LA 화물노선을 개척하고, 이듬해 LA까지 여객기도 취항했다. 1972년에는 당시 최신 기종인 미국 보잉사의 B747 점보기와 에어버스사의 A300기종 6대를 구매하여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고, 1973년에는 서울-파리 화물노선, 1975년에는 서울-파리 여객노선을 개설하며 대한항공은 점차 건실한 항공사로 자리잡았다.
1973년 대한항공 보잉 747기 취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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