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일

3.1 만세운동

산풀내음 2016. 12. 27. 22:21

19193 1,   3.1 만세운동

 

3·1 운동 또는 3·1 만세 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 3월 1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독립운동 또는 3·1 인민봉기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고종의 인산일인 1919 3월 3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이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민족대표 33으로 부르며, 그밖에 만세 성명서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직접, 간접적으로 만세 운동의 개최를 위해 준비한 이들까지 합쳐서 보통 민족대표 48 또는 프랭크 스코필드를 포함 민족대표 49으로도 부른다. 이들은 모두 만세 운동이 실패한 후에 구속되거나 재판정에 서게 된다. 3개월 가량의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조선총독부는 강경하게 진압했다.

 

민족대표 33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임예환 나인협 홍기조 박준승 양한묵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이종훈 홍병기 이종일 최린(이상 천도교 대표 15) 이승훈 박희도 이갑성 오화영 최성모 이필주 김창준 신석구 박동완 신홍식 양전백 이명룡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준수(이상 기독교 대표 16) 한용운 백용성(이상 불교 대표 2)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수가 106 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7,509, 구속된 자가 4 7천여 명이었다. 한편 신복룡 교수나 일본 측 야마기 겐타로 등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약 50만 명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919 3월 당시 일제 강점기 조선의 전체 인구는 1,678 8400명이었다.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당시 조선 인구 중 2.76%에서 2.97%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조선총독부의 기록대로라면 전체 국민 중 6.31%가 만세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보신각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민중들


 

3·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에 의한 강경책을 펴던 조선총독부문화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된다. 1946 3월 1 27회 기념식을 시초로 국가 경축일로 지정되고, 1949 10월 1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공포함으로써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3.1.운동 당일 날의 전단지 내용

 

태상황제가 승하하신 원인을 아시는가 모르시는가? 평소 건강하옵시고 또 아프시다는 환보도 없으신 분이었는데 아닌 밤중에 잠자리에서 갑자기 서거하셨으니 어찌 이것이 이변이 아니리오 2천만 동포여, 금일은 세계 개조의 날이요 국권회복의 날이니 일어나라 일어나라….

 

3.1운동시 사용한 태극기

소총에 맞아 사망한 여학생

태형 피해자

일경에게 귀가 잘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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