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일

일제, 만주국 수립

산풀내음 2016. 12. 27. 22:25

19323 1,

일제, 만주국 수립

 

1989년 청일전쟁의 승리로 얻게 된 요동반도 할양을 시작으로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의 결과1905 9 5일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Treaty of Portsmouth)에서 남만주 철도와 영지의 조차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일본은 남만주 철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1905년부터 관동군을 설치하여 주둔시켰다.

 

한편 일본은 1차 대전 이후 중국 최대의 군벌 중에 하나인 장쭤린(張作霖)의 봉군(奉軍, 봉천파)을 하며 중국 동북지방을 노렸다. 그러나 1927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혁명군이 북벌운동을 개시하면서 장쭤린을 압박했고 이에 밀리자 일본은 장쭤린이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장쭤린을 제거했다. 이후 장쭤린의 아들 장쉐량(張學良) 1929년 마침내 국민당 정부의 장제스에 합류했고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 여순·대련의 조차지 및 남만주 철도의 회수, 영사재판권 철회, 일본에 의한 철도부설권 및 탄광개발권 확장에 대한 반대, 일본인, 조선인에 대한 가옥임대료 및 소작료 인상 또는 계약갱신 거부 등을 주장했다. 이로 인해 일본인의 동북 지역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또 한편 1929년 발생한 세계 경제대공황(1929~39)으로 성장일로에 있던 일본 경제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일본이 이러한 위기를 타파하고자 만주 전체를 침략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1931 7만보산 사건 등이 터져 나와 양국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이때, 관동군은 다시 한번 계략을 꾸며 1931 9 18일 자작극인 류타오후 사건을 일으켜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이를 우리는 만주사변이라 한다.

 


만주사변, 1931 9 19일 새벽 일본 관동군이 일방적으로 장쉐량 군을 공격해서 봉천성을 장악한 뒤 환호하는 모습. 만주사변의 출발점이 된 이 사건 이후 조선은행은 만주에서 군자금을 취급하면서 영업이익을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1925년 이후 계속되었던 긴축경영에서 벗어났다.

 

만주를 침략한 일본 관동군1931 11월에 동북 3성 전 지역을 장악했고 1932 1월 장쉐량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반만항일의 거점인 진저우(錦州)를 점령한 후, 2 '신국가 건설 막료회의'를 개최해 만주국 건국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어서 관동군은 구() 봉천 군벌계 장성들을 앞세워 청조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溥儀)를 집정이라는 자리에 앉힌 후, 국제연맹이 중국의 제소를 받고 파견한 리튼 조사단이 만주에 도착하기 전인 1932 3 1일 만주국의 수립을 내외에 선언했다. 일본이 푸이를 앞세워 만주국을 세운 것은 대륙 침략 전쟁의 병참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만주국 황제 뿌이

 

만주국의 수도는 신징(新京, 지금의 창춘(長春))으로 하고, 연호는 대동이라 했다. 일본은 같은 해 9월 일만의정서를 조인하고 만주국을 정식으로 승인했으며, 이어 독일, 이탈리아, 교황청, 스페인, 헝가리, 폴란드 등 극히 일부 국가도 일본에 이어 만주국을 승인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부당성을 호소하고 국제연맹이 1933 2 24일 임시총회에서 만주국을 괴뢰국가로 규정한 '리튼 보고서'를 채택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는 승인 받지 못했다. 총회는 만주국을 승인하지 않고 만주를 열강들의 공동관리하에 둔다는 권고안을 42 1로 의결하자 일본은 이에 불복하고 다음 달 27일 국제연맹을 탈퇴했다.

 

이후 관동군은 러허작전(熱河作戰)으로 청더(承德)를 점령해 만주국의 영역은 랴오둥(遼東),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러허(熱河) 4()에 이르렀고 인구는 3,000만 명에 달했으며, 1934 9월에 제정이 수립되면서 푸이가 황제로 즉위했고 연호를 강덕(康德)으로 고쳤다.

 

만주국의 실세는 관동군 사령관이었으며, 경제면에서도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전 철도를 경영하고 닛산 콘체른이 진출해 개발사업을 독점하는 등 일본이 실세를 장악하고 있었다. 만주국은 1945 8월 소련의 참전으로 관동군이 괴멸하고 푸이가 소련군에 체포되면서 무너졌다.

 

만주국 황제 시절, 일본군과 만주국 대신들에게 둘러쌓인 푸이(계단 가운데 안경 쓴 사람).

만주국 초대 내각

황궁으로 건립된 동덕전(同徳殿)

만주국 수도 경찰청, 현 장춘시 공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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