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5일

이란, 석유 국유화 법안 가결

산풀내음 2017. 1. 12. 20:08

19513 15,

이란, 석유 국유화 법안 가결

 

이란의회가 이란의 석유를 독점지배하고 있는 영국자본의 앵글로·이란석유회사(AIOC)에 대한 국유화 법안을 1951 3 15일 가결했다.

 

석유 국유화는 모사데그(Mohammad Mossadegh, 1882 ~1967)를 지도자로 하는 국민전선이 주도했다. 모사데그는 70세를 넘은 노인이었지만, 장관과 법관 등을 역임한 실력자로 이란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의회는 모사데그를 석유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했고, AIOC의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국유화를 지지해 이날 국유화가 가결된 것이다. 게다가 8일 전인 3 7외국의 지원 없이 석유 국유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온 알리 라즈마라 수상이 광신적인 이슬람교도에게 암살된 것도 석유 국유화를 촉진시켰다.

 

Mohammad Mosaddegh, former prime minister of Iran

 

팔레비 이란 국왕도 국민전선의 압력으로 모사데그를 수상으로 임명하고 석유 국유화 법안에 서명했다. 모사데그가 석유 국유화에 이어 이란국영석유회사(NIOC, National Iranian Oil Company)를 설립하자 영국은이란산 석유판매를 방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고 발표했다. 국제석유자본도 영국에 화답, 이란 석유의 취급을 거부하자, 석유수입에 크게 의존해 온 이란경제는 크게 타격을 입었다. 외화가 부족해지고 수입이 감소하자 국민들 사이에는 반() 모사데그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1953 8미국 CIA영국 정보부의 도움으로 모사데그 타격대를 조직했고, 미국과 영국의 사주를 받은 파즐롤라 자헤디 장군의 팔레비 쿠데타로 실각되어 체포 당해 금고 3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다가 1956 8월에 석방되었고 이란은 모사데그의 지지자와 친 팔레비 모세데그 반대파로 나뉘었다.

 

이후 모사데그를 몰아낸 쿠데타에 일조했던 레자 샤 국왕의 팔레비 왕조는 미국을 등에 업고 전제정치를 자행하였다. 그리고 이란은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충실한 동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