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산풀내음 2017. 1. 15. 18:48

1982 3 18,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2 3 18일 부산의 고신대(고려신학대학) 학생들인 문부식, 김은숙, 김화석, 박정미 등은 미국이 신군부의 쿠데타를 방조하고 광주학살을 용인한 것을 비판하면서 부산미문화원에 잠입하여 방화하고 “미국은 더 이상 남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살포했다. 그러나 방화 과정에서 부산미문화원 안에서 책을 보던 동아대생 장덕술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부 당국은 3 19일 저 수사기관에 비상 근무령을 내리고 현상금을 내건 체포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3 30일 김화석, 이미옥, 최충언, 박원식, 최인순 등을 검거하고, 문부식과 김은숙을 수배했다.

 

불타는 미문화원()과 구속되는 문부식()

 

부산미문화원을 방화한 후에 원주 교구 교육원에 은신해 있던 문부식과 김은숙은 가톨릭 원주교육원 원장인 최기식 신부 및 한강성당 주임을 맡고 있던 함세웅 신부와 자수 문제를 상의한 끝에 4 1일 사건 발생 14일 만에 자수했고, 방화범 3, 유인물 살포자 3, 의식화 학습에 동참한 3명 등 11명이 검거되었다.

 

또한 4 2일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김현장이 문부식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검거되었으며, 최기식 신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및 범인은닉 혐의로 검거되는 등 원주 인사들 15명이 구속되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계엄령, 현주건조물방화치사상,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최하 징역 1, 집행유예 2년에서 최고 사형까지 판결을 선고 받았으며, 문부식과 김현장에게는 사형 선고를 내렸다가 1983년 국민화합조치의 일환으로 감형 조치되었다.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전국의 미 문화원도 반미투쟁의 표적이 되어 1982 11월 광주 미 문화원에는 화염병이 투척됐고, 1983 9월 대구 미 문화원에서는 폭발물이 터져 수 명이 사상당했다. 1985 5월 서울의 미 문화원은 73명의 대학생들에게 점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테러리스트적 투쟁방식으로 인해 운동권일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