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18일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 레니에 3세와 결혼

산풀내음 2017. 3. 2. 20:24

19564 18,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 레니에 3세와 결혼

 

1956 4 18일 미국의 헐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Grace Patricia Kelly, 1929 11월 12 ~ 1982 9월 14)가 모나코궁전에서 레니에3세와 결혼하여 드디어 모나코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26살의 어린 나이로 인기절정의 은막을 은퇴하고 세인의 주목 속에 세기의 결혼식을 거행했다.

 


 

그레이스 켈리는 1929 11 12일 필라델피아에서 부유한 실업가인 아버지 잭 켈리와 잡지 모델인 어머니 마가렛 마제 켈리 사이에서 2 3녀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그녀의 본명은 그레이스 파트리시아 켈리이다. 켈리는 배우가 되기 위해 18세때 뉴욕으로 가서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트`라는 연극학교를 졸업하고 패션모델과 CF모델로 활동하다가 1949년 브로드웨이로 들어가 주목받는 배우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51 `14시간`이라는 영화로 데뷔하여 `하이눈` `모감보` `다이알M을 돌려라` `갈채`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써 한층 더 성숙해졌다.

 

 

그레이스 켈리는 칸 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에 갔다가 프랑스 주간지 `파리마치` 편집장의 소개로 모나코 왕자 레이니3세를 만나게 되어 결혼식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그레이스 켈리는 왕비로써 각종 문화행사와 자선단체의 후원자로써 활약하며 유럽의 작은나라 모나코를 온 세상에 알려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켈리는 레니에 3세와의 사이에서 1957년에 장녀 카롤린 공녀(公女), 1958년에 외아들 알베르 2, 1965년에 차녀 스테파니 공녀를 낳아 총 1 2녀를 두었다. 카롤린 공녀의 탄생으로 레니에 3세에게 적법한 후계자가 생기자 프랑스에 합병당할 위기를 넘기게 됐는데 이때 모나코 전역이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후 켈리 덕분에 모나코에 미국인 관광객이 폭증했다.

 

 

그러나 세기의 결혼 이후, 안타깝게도 결혼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켈리는 '배우 생활을 하며 매너를 지키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결혼 이후에 따로 배울 것이 없다.'고 했지만, 공가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모나코에서는 주로 프랑스어를 썼는데 켈리는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해서 언어 장벽이 있었기 때문에 적응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비로서 공가의 엄격한 규칙이나 전통을 제대로 지켜야 하고, 언제나 긴장하며 위엄을 갖춘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또 크게 웃을 수도, 누구와 잡담을 할 수도 없는 생활이었다.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레니에 3세하고 갈등도 많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켈리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급기야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게다가 시어머니, 시누이와도 사이가 좋지 못해 시집살이를 꽤나 했으며, 남편인 레니에 3세는 모나코 내에서 켈리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금지했다. 헐리우드의 자유로운 생활을 그리워하던 차에 1962년에 히치콕이 영화 <마니>에 켈리의 출연을 제안해 왔고 배우로 복귀하려 했으나, 영화 속에서 켈리의 배역이 도벽이 있는 캐릭터였던 것이 알려지자 품위 문제로 모나코 언론이 반대하고 나섰고 모나코 국민들도 반대해서 결국 무산됐다.

 

1982 9 13일에 차녀 스테파니 공녀를 조수석에 태우고 자신이 직접 차를 운전하여 프랑스로 가던 중에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차가 그만 산비탈로 굴러떨어지는 교통사고가 났다. 같이 타고 있던 스테파니 공녀는 가벼운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지만, 켈리는 치명상을 입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다음날인 9 14일에 사망했다. 향년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