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20일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 개봉

산풀내음 2017. 3. 4. 17:19

1938 4 20,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개봉

 

나치스 독일이 위신을 걸고 개최한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가 히틀러 49번째 생일인 1938 4 20일 베를린극장에서 처음 개봉됐다. 올림픽 후 2년만에 영화가 개봉된 것은 제작에 엄청난 물량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160여명의 스태프가 총 40m에 달하는 필름을 소모했고, 이를 4시간짜리 영화로 편집하는데만 18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을 여성 감독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1902-2003)이 총지휘했다.

 


 

최초로 올림픽 전 과정을 필름에 담은 올림픽 기록영화의 효시이자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1 '민족의 제전' 2 '미의 제전' 2부작으로 구성되었으며, 1부는 육상경기를 2부는 수영 등 그 밖의 종목을 다루었다.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장면은 1부에 나온다. 육체의 아름다움과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영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행선을 이용한 공중촬영, 레일을 타고 하는 이동 촬영 등 새로운 기법들도 동원되었다.

 

히틀러에 의해 지명된 여류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1936 8 1일부터 14일간에 걸쳐 개최됐던 베를린올림픽을 40m에 달하는 필름에 담아낸 후 능숙한 솜씨로 편집해 400km의 필름으로 만들어냈다. 미국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엔스의 멋진 육체의 움직임과 우리나라 손기정 선수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 등을 다각적으로 잡아냈다.

그녀는 주제에 따라 때로는 시간적 흐름을 무시하고 약동하고 정지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추구했다. 올림피아는 슬로모션과 줌 인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상으로 그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20세기 최고의 기록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권력기반을 굳건히 하고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선전할 생각이었던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작돼 `나치스의 선전영화`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다큐멘테터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찬사를 받으며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녀 스스로 언급한 “다섯번의 삶”처럼 무용수, 영화배우, 감독, 사진작가 그리고 스킨스쿠버였던 레니 리펜슈탈은 1902 822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처음엔 무용수로서 성공적인 삶을 시작했지만 사고로 다리를 다치게 됨으로써 영화배우의 길을 가게 되었다. 1926년 독일영화의 독특한 장르인 “산악영화”의 선구자인 아놀드 팡크(Arnold Fanck)의 영화 <신성한 산>(Der heilige Berg)으로 데뷔하여 수많은 모험영화와 산악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리펜슈탈은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스타배우로 성장하였다. 배우로서 활동하며 영화감독으로의 길을 준비하던 그녀는 드디어 1932년 신비롭고 로맨틱한 산악영화 <푸른 빛>(Das blaue Licht)에서 주연 및 감독으로 감독데뷔를 하고 이 영화는 그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큰 성공을 거뒀고 이는 나치당수인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히틀러와의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을 토대로 친한 친구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후 그녀가 히틀러의 여인이었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사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히틀러의 관심과 믿음으로 리펜슈탈은 1933년 나치정당을 위한 첫 번째 기록영화 신념의 승리(Sieg des Glaubens)’를 만들게 되고 나치당의 모습을 미화시켜 선전영화의 표본을 제시하여 히틀러의 총애를 받는 기록영화 감독이 되었다. 다음해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제작한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는 나치당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담은 기록영화로서 영화사뿐만 아니라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대표적 인용자료로 이용될 정도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선전영화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은 리펜슈탈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계기로 막대한 비용과 당시의 최신기술과 최고인력을 이용하여 최고의 스포츠영화로 기록된 올림피아(Olympia)’를 만들어 기록영화의 독보적인 존재로 올라섬과 동시에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종전이 되고 결국 리펜슈탈은 전범으로 1948년 재판대에 섰지만 석방되었다. 나치의 협력자라는 과거의 행적으로 더이상 영화작업을 하기 힘들었던 리펜슈탈은 이제 감독의 길을 접고 사진작가로의 인생을 시작하였다. 조국을 떠나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자연적인 모습을 사진에 담고 노년의 나이에 스쿠버다이빙을 배워 해저의 아름다움을 직접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냈던 그녀의 사진작품과 사진술은 그녀에게 다시금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2003 9 8일 뮌헨 근교의 자택에서 101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