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26일

남아공, 최초의 총선 실시

산풀내음 2017. 3. 9. 20:28

19944 26,

남아공, 최초의 총선 실시

 

이 지역은 1488년 희망봉의 발견으로 유럽인에게 처음 알려졌으나 처음에는 유럽인들은 이 지역에 썩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유럽인들은 1652년 얀 반 리벡을 따라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이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 제도와의 무역에 있어 중간보급항 차원에서 케이프타운 식민지를 개척했다. 1679년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인 및 독일과 프랑스등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이민온 신교도 정착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였고 그들은 스스로를 보어(Boer)인이라 불렀다. 보어란 말은 네덜란드어로 "농부"란 뜻이다.

 

1795년에 영국군대가 침략하여 케이프타운을 점령했고 케이프타운은 1814년 정식으로 영국식민지가 됐다. 이후 보어인들이 내륙으로 밀리면서 영국과 보어인 사이에 갈등이 커졌고 결국 1899년 보어전쟁(Boer War)이 발발한다. 보어인들은 독일의 물밑지원을 받았지만 1902년 트란스발, 오라녜 연합군이 영국에 패전하면서 영국령으로 넘어갔다.

 

Boer War

 

1909년 영국의회에서 남아프리카법을 통과시켜 남아프리카 연방이라는 입헌군주국형태의 자치체가 승인되었고 이듬해인 1910년 정식으로 영연방국가의 일원으로 독립했다. 1948년 영국계보다 숫적으로 우세한 보어계가 주축인 우익정당 국민당이 집권하여 영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종래의 인종차별관행을 제도화한 가혹한 인종차별 정책 즉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됐다. 1961년 백인들만의 국민투표에 의해 개헌이 되어 영국여왕의 통치를 벗어나 대통령을 세우고 공화국이 되었다.

 

342년 간의 백인통치와 흑백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종지부를 찍은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 선거가 폭탄테러 등 선거방해가 자행되는 가운데 1994 4 26일부터 3일간 투표(South African General Election, 1994)에 들어갔다. 이번 선거에는 흑인 민권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와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의 집권 국민당 등 총 27개 정당이 참여했다.

 

22백만명의 유권자가 하원 4백명과 상원 90명 및 지방의회 의원 425명을 선출할 이번 총선은 26일 오전 7(이하 현지시간) 불구자와 입원환자, 임산부, 노약자들을 대상으로 첫 투표에 들어갔으며 이어 27, 28, 29일 사흘간 본격 투표가 실시되었다.

 



 

한편 투표 전날인 25일 백인극우파의 소행으로 보이는 2건의 폭탄 폭발사고로 12명이 사망하는 등 선거 방해테러 행위가 격화되기도 했다. 25일 오전 9시 요하네스버그 근교 저미스턴 마을의 택시정류장에서 1백㎏의 대형 폭탄이 터져 흑인 9명과 백인 1명 등 10명이 사망했고 41명이 부상했으며 이날 오후 9시 프리토리아 한 식당에서 폭탄이 폭발해 흑인 2명이 죽고 9명이 부상했다.

 

선거 방해테러에도 불구하고 하루 연장한 29일 투표가 끝났고 투표결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전체 유효 투표의 62.5%를 획득하며 승리했다. 남아공의 역사적 전인종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넬슨 만델라 의장이 5 10일 첫 흑인대통령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