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1일

헤이마켓 사건 (The Haymarket Affair)

산풀내음 2017. 3. 1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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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마켓 사건 (The Haymarket Affair)

 

18865월 1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에서는 8만 명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미시건 거리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다. 이들이 집회를 연 이유는 노동력 착취에 대항하여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 이 집회는 시카고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파업으로, 이날 미국 전역에서 30~50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5월 3 시카고 인근의 맥코믹 공장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나왔다. 공식적인 사망자의 수는 4명이라고 한다. 다음날인 5월 4, 이에 격분한 노동자들이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헤이마켓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증언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였으나, 오후 10:30분 경찰의 해산 시도에 누군가가 경찰 쪽으로 사제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경찰 한가운데 떨어졌고 폭발, 경찰 측에는 1명은 폭발로 인해 즉사, 그 외 6명이 폭탄 파편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다. 경찰은 즉각 발포, 노동자 측에 7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다.

 


 

그 후 집회를 주도한 노동운동가 8명이 폭동죄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충분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판부는 저 8명 중 7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결국 사형에 처해진 것은 5명이지만.

 

1892 6 26민주당 출신 일리노이 주지사 존 피터 알트겔드는 헤이마켓 사건 주동자들의 전면 사면 1 8천 단어짜리 장문의 글과 함께 선언했다. 그 덕택에 그나마 무기징역형에 놓여졌던 세명의 노동자는 자유는 물론 목숨까지 건질 수 있었다. 다만 이 사면으로 알트겔드는 당시 노동 운동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던 중산층과 그 공포을 타겟으로 한 공화당 측에 신랄한 비판을 받았고, 이후 선거에 연거푸 패배하면서 그의 정치 커리어가 끝나고 만다.

 

헤이마켓 사건 이 후로도 시카고의 노동 운동은 오히려 성장했고, 8시간 노동도 현실화 되지만 그건 이 후의 이야기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1889 7월 세계 여러나라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모여 결성한 제2 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 5 1일을 국제적 기념일로 결정한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근로자의 날이 9월 첫째 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