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일

중국 정계 거물 허가둔, 미국으로 망명

산풀내음 2017. 3. 16. 19:48

19905 2,

중국 정계 거물 허가둔, 미국으로 망명

 

중국공산당 중앙고문위원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으로 관영 신화통신의 홍콩 분사장이었던 허가둔이 1990 5 2일 홍콩을 통해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했다.

 

 

52년이라는 공산당원 경력과 함께 중국의 서방세계에 대한 얼굴격인 신화사 전홍콩분사장을 지낸 허가둔의 「미국 망명」은 중국 원로지도부에게 「제2의 천안문사태」와 같은 충격을 던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임표 이래 최고위급인 허가둔의 망명은 사실상 지난해 64천안문 사태와 연관이 있는 만큼 중국의 정치상황이 단순히 민주화 세력에 의한 도전뿐만 아니라 당내의 결속과 정통성에도 심각한 위기구조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강소성의 농민 아들로 태어나 항일 빨치산 경력을 통해 잔뼈가 굵은 허는 강소성 당 제1서기 및 소장등을 역임한 엘리트 간부로서 1997년까지의 홍콩반환을 처리하기 위해 19836월 홍콩의 신화사 분사장으로 부임했었다. 개혁노선을 취한 중국측의 대표로서 그는 평소 자본주의 경제제도에 호의를 보였으며 홍콩이 반환된 이후에도 50년간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앞장서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또 853월 중국 어뢰정사건이 발생하자 중국외교부를 대표해 국교관계가 없는 한국과 홍콩에서 직접 교섭을 맡는 등 외교수완도 발휘했으며 7년간의 분사장 재직기간 동안 두 차례 미국을 방문, 서방세계와도 많은 교우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지난해의 64천안문사태 이후 개혁파 조자양이 실각함에 따라 홍콩에서 개혁주의자로 성가를 누려온 허의 정치적 장래는 사실상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강경노선으로 선회한 중앙정부는 중국고위층으로서는 그다지 많지도 않은 그의 「고령」을 이유로 사직시킨데 이어 허가 소지한 외교관 여권의 몰수는 몰론 그의 본거지인 남경으로 들어가 살도록 강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사직 당시 홍콩에서 경험과 지식을 살려 자본주의 경제의 장점을 도입한 중국경제 발전모델을 연구하기 위해 홍콩에 이웃한 심수에 거주하기를 희망한 허에게 중국정부가 보인 징계와 불신으로 추측돼 그의 망명 원인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