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일

광우병 촛불 시위

산풀내음 2017. 3. 16. 20:02

20085 2,

광우병 촛불 시위

 

2003 12월 미국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즉각 수입중단 조처를 내렸다. 2번째, 3번째는 2008년 수입 재개를 하기 전에 발생했고 2008 4월에 4번째 사례가 발생한다. 사례 발생 직전인 2008 4 19일 열린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2003 12미국에서 소해면상뇌증(광우병) 발생 후 수입 금지와 재개가 되풀이되던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하고 부위 대부분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도록 합의되었다. 이는 2008 2 25일 이명박 정권 출범 후 2008 4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지 부시와 함께 열리는 첫 한미정상회담에 대비한 아부성 선물이었다.

 

4번째 발생은 수입 재개 이후 첫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도 않았는데 일부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자발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중단한 것만 봐도 사안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협상 직후 공개된 주요 내용과 2008 5월 5에 공개된 합의문은 축산농가의 피해,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 지적되어 각계 각층으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정당, 각종 언론, 전문가 등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논란은 이전에도 존재하였으나, 2008에 협상이 체결되면서 논란이 확대되었다.)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할 수 없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기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시민들의 불안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보다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시민들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게다가 불과 몇 개월 전인 노무현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대응 때 보여 주었던 당시 주류언론한나라당입장은 한마디로 "미국산은 위험하니 안된다"였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도 안 흘렀는데, 게다가 노무현 정부 때 보다 수입 검역기준이 완화되었는데도 여당이 된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미국산만큼 안전한 소고기 나와보라 그래"로 태세 전환이었다.

 

5월 2 첫 집회 이후 2개월간 연일 수백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하였으며, 6 10일을 정점으로 하여 7월 이후에는 주말 집회가 계속되었다. 시민들은 대부분 광우병 촛불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으나 보수 언론에서는 일부의 중고생들은 일부 교사들이 수행평가 가산점을 준다며 참석을 종용하여 참석한 것이라며 비판하기도 하였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참가도 많았으며, 연예인이나 음악가들이 많이 참가하여 ‘문화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집회가 끝난 뒤 거리행진을 하며 청와대로 향하는 과정에서 경찰들과 폭력적으로 충돌하기도 하였다.

 

2008 5월 2 인터넷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의 주최 하에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청계 광장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조치에 반발해 촛불 집회가 열렸다.[12] 당초 주최 측은 경찰에 이 집회를 참여 인원 300여 명 정도의 문화제로 예상하였으나, 실제 참석 인원은 이를 크게 상회하여 최소한 1만 명에 이르렀다.

 

5월 31에는 5만 명 이상의 시민이 시청 앞 광장에 모였으며, 역시 가두 시위로 확대되었다. 시위대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청와대와 연결된 주요 길목으로 향했으며, 밤새 경찰과 대치했다. 시위대가 청와대로 나아가는 와중에 일부 과격시위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였으나 참여한 시민들의 자체적 자정노력으로 진정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모습에 민감히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물대포로 물을 발사하고, 소화기를 뿌려 대응하여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가두 시위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시민들은 6월 5 목요일부터 6월 8 일요일까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72시간 동안 연속으로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가자 중 일부는 텐트를 치고 철야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연휴 첫날인 6 6현충일 시위에는 사상 최대인 경찰 추산 56천여 명, 주최 측 추산 20만여 명이 참가하였다.

 

6월 시위부터 일부 시위대가 지하철 광화문역 공사장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쇠파이프와 망치, 경찰에게서 빼앗은 소화기 등으로 버스를 부수는 한편 공사장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전경들에게 물을 뿌렸다. 또한 경찰을 향해 폭죽을 쏘거나 스프레이에 불을 붙여 불길을 뿜으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모두 수십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6월 10에는 6·10 민주항쟁 21주년을 맞아 시위 이래 사상 최대인 경찰 추산 8만 명, 주최 측 추산 70만 명(전국 합산 100만여 명)이 참가하는 촛불 대행진을 개최했다. 이 시위에서 경찰의 컨테이너 박스가 등장한다. 경찰 측은 당일 새벽부터 세종로 충무공 동상 앞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안국로 등 청와대로 진입할 수 있는 길목에도 총 60여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서로 용접한 후 바닥에 철심으로 고정시켜 바리케이트를 쳤다. 또한 컨테이너에 인화성 물질인 그리스를 칠하고 그 위에 대형 태극기를 붙였다. 컨테이너 바리케이트를 네티즌들은 “명박산성”이라고 희화화해 부르기도 했다.

 

2008 6 7, 서울 시청 앞 광장

2008 6 10일 집회




 

20086월 30부터 7월 6까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서울광장에서 시국미사가 열렸다. 평화적으로 진행된 미사의 마지막 날인 7 6일 사제단은 국민승리를 선언하였다.

 

이후 시위는 기존의 대규모 동원보다는 게릴라성 시위로 변화하였다. 일부 시위대들은 꾸준히 조계사에서 농성하고 있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부들을 지지방문하고 있다. 8월 말에는 불교계가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 편향을 비판하며 서울 시내에서 수십만 명이 모인 집회를 개최하였으며, 기존의 쇠고기 협상 관련 시위대들의 상당수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어느 정도 시위의 규모가 축소된 7월 초에 대한민국 경찰은 광우병 대책회의 간부 6명을 일괄 수배하였다. 해당 수배자들은 경찰의 체포를 피해 2008 10월까지 조계사에서 농성하다가 11월 초 체포되었다.

 

시위세력은 시위 중에 국내 일부 기업 및 언론사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곳과 혐오적인 기업을 지목하기도 하였는데 우호적인 기업으로는 삼양식품, 다음,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등이었고 혐오적인 곳으로는 삼성, 농심, 롯데, 조중동, KBS 등을 지목하였다. 이들은 조중동 계열 및 그들의 대형 광고주이다.

 

또한 이들은 삼양식품을 우호기업으로 표방하며 시위참가 때 삼양식품들의 제품들을 산성처럼 쌓아놓고 삼양식품 제품을 이용하자는 운동을 펼쳤으며 "조중동" 절독 및 불매운동,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하는 기업상품에 상품 불매운동도 벌이는 등 이들 기업에 대해서 반()기업 시위로 연장하기도 하였다. 이에 삼양식품은 조중동 지면광고를 내지 않기로 하는 등 기업들이 시위대의 반응에 동조하기도 하였다. 이에 해당 언론들은 시위자들이 이제는 언론사 고유권한까지 방해하고 있다며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에 "조중동"은 집회에 우호적인 미디어다음에 뉴스공급을 중단했고 다음측도 이에 2011년까지 조중동 관련 매체의 뉴스게재를 거부했다.

 



 



명박산성, 국민을 위한 결단(?)이며 산성 발명자에게는 결초보은

 

본래 과격시위대에 대한 컨테이너 방어전술이 처음 도입된 것은 참여정부 시기 2005 11월의 일로 이후 경찰청장이 된 당시의 부산 경찰청장 어청수가 APEC 정상회의장에 돌격하려던 2만여 명의 과격시위대에 대하여 컨테이너 바리케이드로 이를 방어하여 효율성이 입증된 바 있다. 그리고 6 10, 서울 시내에서의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에 대비하기 위하여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이 세종로에 설치한 것이다. 명박산성은 세계 어느 경찰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경찰, 아니 'MB경찰' 곧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의 위대한 발명품이자 특허품이었다. 한 마디로 명박산성 저작권자는 어청수 전 경찰청장이다.

 

명박산성의 효시

 

바리케이드 설치는 한국의 전통적인 전술이었다. 이러한 전술은 4.19혁명 때 소방차, 경찰차, 시내버스를 동원하여 실시된 바 있으며, 박정희 정권 중 6.3항쟁 김대중 정권인 2002년 12월,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에 대하여 미대사관으로 향하는 시위대를 세종로에서 저지할 당시, 노무현 집권 7일차인 2003년 2월 31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시위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세종로 등에서 시위대 진로 차단, 특정 대상 보호, 물리력 충돌 최소화 등과 같은 목적으로 실시되어 왔다. 그런데 이와 달리 이명박 정권은 언제라도 철거 및 재배치가 가능한 차벽과는 달리 공공시설인 광장에 신속한 철거가 불가능한 고정구조물을 설치해 놨다는 점에서 산성이라고 비꼼을 당하였다.

 

이명박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 당시 세종로사거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만든 '명박산성'을 두고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시간>에 따르면, 이명박은 광우병 사태가 최고조로 달했던 2008 6 10일 직전에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에게 "시위대가 청와대에 들어오는 일이 있더라도 인명 피해가 있으면 절대 안 됩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대처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경찰이 청와대로 향하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무리하다가는 자칫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에 당부한 말이었다"라고 밝혔다. 이명박은 "'명박산성' 'MB식 소통이 이런 것이냐' 하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물리적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라면서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이명박은 … ???

 

명박산성의 창시자 어청수에게 이명박은 퇴임 후에도 결초보은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미국산 광우병 촛불시위로 취임 두 달 만에 머리를 두 번이나 숙여야만 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어 청장이 만든 명박산성 때문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MB는 이를 잊지 않았다. 어청수 전 경호처장은 2010 1월 경찰청장 퇴임 이후, 2011 8월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가 두 달 후 이명박과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경호처장에 임명됐다가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를 나왔다. 은혜는 은혜로 갚는 것임을 MB는 손수 보여주었다.

 

하지만 MB도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물론 황제테니스와 미국 방문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일에 골프를 '당당하게' 치면서 한 번씩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지만 5년 내내 욕먹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연히 어청수 전 경호처장은 아예 잊혀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청수란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좋은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호처장 퇴임 후에도 두달 동안 관용차량과 운전기사를 사용한 것이다. 27 <CBS>는 청와대 경호실은 지난 2월 퇴임한 어 전 처장에게 두 달 동안 관용차량인 에쿠스와 운전기사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단독 보도했다.

 

대통령은 퇴임하면 예우를 받지만 경호처장이 예우를 받는 법은 없다. 현행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등에는 퇴직 경호처장에게 관용차량과 운전기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고 <CBS>는 전했다. 특히 청와대 경호실은 내부규정까지 만들어 퇴직 경호처장들에게 관행적으로 차량과 운전기사를 제공해 온 것으로 알려져 특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 경호실측은 "그 사안과 관련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이 불가하다"고 말했다고 <CBS>는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어 전 처장은 <CBS>와의 전화 통화에서 "퇴임 후 (이명박 전 대통령)업무와 운동 있을 때 경호차량을 뒤따라가기 뭐해서 1~2차례 사용했다"고 시인했다. 어 전 처장은 "오히려 재직 당시 퇴직 경호처장에게 기간 제한 없이 계속 관용차량과 운전기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경호실 규정을 1년간 전직 대통령 경호에 필요할 때만 사용할 수 있도록 축소시켰다"고 주장했다고 <CBS>는 보도했다.

 

두 달 동안 관용차 이용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분노하고 있다. @arc***** "관행으로 쓰는 그 돈들, 1원까지 세금이다. 제발 가치있게 써다오"라고 했고, @ywy**** "이 보다 더 지저분할 수는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seo***** "국가운영을 너무도 사적으로 하는 나라"라고 탄식했다. @ap**** 역시 "이 비루한 이명박근혜 충견 *들은 천박한 상전에게 배운 것이 나라 돈을 주인 없는 돈으로 먼저 먹는 사람이 주인이란 생각하는 듯 대한민국국민 혈세로 도대체 무슨 짓인지사용료 청구하고 특혜제공자 처벌해야!"한다고 분노했다. (진실의 길, 2013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