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산풀내음 2017. 3. 17. 17:34

19845 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교황 프란치스코 이전 265명의 역대 교황 가운데 한국을 찾은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유일하다. 그는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 방한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명운동을 통해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인 첫 방한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 5 3∼7일이었다. 한국 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방한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5 3일 낮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비행기 트랩 아래 엎드려 땅바닥에 입을 맞추던 장면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때 그는 "순교자의 땅"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한국 땅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했다.

 

도착 성명에서 논어를 인용해 한국어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인사해 큰 화제를 낳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기간에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 103명을 성인으로 모시는 역사적인 시성식을 주례했다. 시성식을 로마 밖에서 거행한 첫 사례였다. 그는 서울과 광주, 대구, 부산을 돌며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사제서품식을 주례하고 노동자와 농어민, 서민, 한센인(나환자) 등을 두루 만났다. 여의도광장과 광주 무등경기장, 대구시민운동장 등에서는 많은 인파가 몰린 가운데 대규모 미사를 집전했다.

 

당시 가까이에서 방한을 도왔던 전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에 따르면 요한 바오로 2세는 광주 방문 때 행사장인 무등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5·18 상처가 배어 있는 전남도청과 금남로를 거쳐 갈 것, 한국 발전상을 보여주는 곳 말고 소록도 나환자 병원에 갈 것을 고집했다고 한다.

 

또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줘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는가 하면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젊은이들과의 대화 행사에서는 청년들이 '군사독재 정권의 실상을 알리겠다'면서 들고 온 최루탄 상자를 흔쾌히 받는 등 시종 열린 모습을 보였다. 한센병 환자들이 생활하는 소록도에서는 환자들 머리에 손을 얹고 "친히 고통을 겪으셨던 예수는 여러분과 함께한다"고 격려하고 축복하던 모습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 10 5∼8일 짧은 일정으로 두 번째 방한했다.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위해서였다. 이 때도 65만 명이 몰린 여의도광장 행사에서 남북한 화해를 기원하는 평화메시지를 낭독했다.

 

84년과 89년 두 차례 방한에서 모두 청와대를 방문해 전두환,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면담했다. 그는 이후에도 한국에 큰일이 있을 때면 종종 애정 어린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축하 메시지를, 2002년 태풍 루사 피해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등을 당했을 때는 위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런 한국 사랑 뒤에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는 인식이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00 3월 바티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권유하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뒤로 교황청은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고 북한에 수십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화해 분위기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교황의 방북 전제조건으로 교황청이 밝혔던 북한 내 전교(傳敎) 활동 인정과 성직자 입북 허용 문제에 북한 쪽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서 방북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