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피격

산풀내음 2017. 3. 26. 21:57

1981 5 1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피격

 

1981 5 13일 요한 바오로 2(Saint Pope John Paul II)는 터키인 청년 메흐메트 알리 아자(당시 23)의 흉탄에 맞아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이 때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 알현을 하던 중이었다. 서둘러 그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게멜리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총알이 교황의 심장을 1㎜ 차이로 비켜간 덕분에 대동맥과 척추를 다치지 않은 교황은 6시간의 대수술 끝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관중에게 붙잡혀 있던 아자는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중태에 빠졌던 교황은 4일 만에 의식을 회복하였다.

 




 

그 후 1983 12 27,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암살미수범이 있는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를 찾아가 20분 동안 둘이서 비밀 대화를 가졌다. 교도소에서 나온 교황은 “그와 나 사이에 나누었던 이야기는 둘만의 비밀로 남을 것이다. 내게 총을 쏜 형제를 위해 기도하자. 나는 이미 진정으로 그를 용서하였다.”고 말하며 그에 대한 사면을 요청하였다. 당시 교황은 파티마의 성모가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믿고 자신의 복부를 관통한 총알을 파티마의 성모상에 봉헌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가 로마 교도소에 수감된 터키인 메흐메트 알리 아자를 1983 1227일 면회하는 모습. 당시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자를 용서했고, 2000년에는 아자의 석방을 청원했다.

진정한 사랑과 용서를 보여준 교황님께 존경을 보냅니다.

 

 

이탈리아 의회 조사위원회에서는 교황 저격 사건의 배후에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가 계획하고 인솔하였으며 불가리아나 동독 등이 협력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소련 측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에서 일어난 공산권 최초의 자유노조 연대를 지지함에 따라 동유럽에서 활발하던 민주주의 혁명 열풍에 그대로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 교황 암살 음모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혹만 있을 뿐 확실한 증거는 없다. 소련 측은 자신들의 연루의혹을 부인했다. 저격범 아자는 배후가 누구인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저서 《기억과 정체성》에서 “아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저격을 계획했다”고 적었다.

 

그 의문의 열쇠를 쥔 저격범 메흐메트 알리 아자(Mehmet Ali Agca) 2010 1 18일 터키 앙카라 인근 예니켄트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가 감옥을 나오면서, 29년 전 저격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아자는 2000년 사면돼 이탈리아에서 출소했지만, 터키로 신병이 인도돼 1979년 저명 터키 좌파 언론인 살해 혐의 등으로 다시 약 10년간 수감됐다가 이번에 풀려났다.

 

아자가 현장에서 체포된 직후부터 암살 시도의 배경은 의문이었다. 터키 극우파 ‘회색 여우’ 일원이었던 그는 언론인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됐다가 탈옥한 뒤 어느 날 교황 저격범으로 나타났다. 당시 폴란드 출신 교황은 공산주의를 강하게 비판했고, 이 때문에 그의 저격 배후에 옛소련과 당시 공산권이었던 불가리아의 정보기관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아자는 이런 의혹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가 취소하는 등 수 차례 말을 바꿔 계획된 음모인지, 정신이상자의 돌출적 행동이었는지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는 18일 출소 직후 “전 세계가 이번 세기에 파괴될 것이다. 나는 영원한 그리스도다”라고 말했고, ‘심각한 인격장애’라는 판정을 건강검진에서 받았다. 일부에서는 그가 미치광이 흉내를 내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아자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에게 편지를 보내, 책을 펴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에게 언론 인터뷰와 영화 제작 제안도 쇄도했었다.


2014 12 27, 아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을 찾아가 헌화했다. 흰 장미를 무덤 앞에 바친 아자는 "성자님,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현지 TV는 전했다. 또 아자는 "1983년 교황과의 만남 때문에 오늘 이곳에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두 차례에 걸친 필리핀 방문 동안 알 카에다에게 목숨을 위협받기도 했다. 테러범들은 1995년 교황이 필리핀 방문 도중 연설하기로 되어 있던 공원에 폭탄을 장치해 교황이 공원에 도착하면 폭탄을 터뜨릴 계획이었으나 이 폭탄이 마닐라의 한 아파트에서 미리 터지는 바람에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1999년의 두 번째 교황 암살계획은 교황의 필리핀 방문 계획을 전격 취소해서 성공하지 못하였다.

 

교황은 2005 4 2일 현지 시각으로 오후 9 47분 사도 궁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였다. 공식 사인은 패혈성 쇼크와 치유 불가능한 심부전증세이다. 선종 직전 그는 인류의 행복을 기원하며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울지 말고 우리 함께 기쁘게 기도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창문 쪽을 응시하며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향해 오른팔을 들어 올려 “아멘.”이라고 강복한 뒤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졌다.

 

 

그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하드리아노 6 이래 455년 만의 비()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이다. 동시에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최연소로 즉위한 교황이기도 하다. 또한, 27년 가까이 재임한 그는 34년 동안 재임한 베드로 31년 동안 재임한 복자 비오 9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