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5월 17일,
미국 대법원, 공립학교에서의 인종 분리는 위헌
여덟 살 흑인 소녀 린다는 집 가까이에 있는 백인 학교에 다니는 게 소원이었다. 그녀가 다니는 학교는 철길 건너 1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딸이 안쓰러웠던 아버지 올리버 브라운은 큰맘 먹고 전학을 시도했다. 결과는 실패. 교장에게 거절당했는데 피부색이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브라운은 소송으로 맞섰다. 이것이 바로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Brown v. Board of Education)’ 사건이다.
1951년 당시 미국 사회엔 ‘분리된 평등’이란 것이 법으로 명시돼 있었다. 이는 18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8년 평등조항이 포함된 수정헌법 14조가 통과되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루이지애나주는 백인과 흑인이 동등한 존재로서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종을 나누는 ‘분리하되 평등한’ 열차시설을 주법으로 규정했다. 6년 뒤인 1896년, 백인 열차 칸에 탔다는 이유로 혼혈인 플래시가 체포됐다. 1심 유죄선고. 항소심에서도 대법원은 ‘분리하되 평등한’ 시설이라면 인종을 분리해도 평등조항에 위배되지 않으며, 열차 칸을 구분한 루이지애나 주법은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반세기 넘게 이어져온 ‘분리된 평등’ 탓에 다들 브라운의 소송이 기각될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그는 대법원에 항소했고, 마침내 1954년 5월17일 미국의 뿌리 깊은 흑인차별에 일침을 가하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미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백인 아동과 흑인 아동을 분리한 시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만장일치의 선언을 하고 과거 1896년부터 이어져온 ‘분리된 평등’ 원칙은 앞으로 공립학교에서 사용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분리하되 평등한’ 대신 ‘분리하면 무조건 불평등’이란 법리가 탄생한 것이다.
대법원장 얼 워런(Earl Warren, 1891년 3월 19일 ~ 1974년 7월 9일)은 “남부의 주 정부들은 이른 시일 내에 인종별 학교를 통합하라”고 명령했다(얼 워런은 1966년 ‘미란다 원칙’을 확립한 주역이기도 하다). 주 정부들은 완강했다. 판결 후 남부지역 백인학교 3000여곳 중 인종 분리를 폐지한 학교는 600여 개에 불과했다.
대법원장 얼 워런(Earl Warren)
하지만 이 판결은 수많은 미국 내 공립학교 아동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공공 교육의 분야에서 인종차별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그 후 이 판결에 준해 공원·공동묘지·극장·식당에서의 인종 분리 정책에 대해서도 줄줄이 무효선언이 이어졌다. (경향신문, 2011.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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