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1일

파리코뮌(Paris Commune), ‘피의 일주일(Bloody Week)’ 시작

산풀내음 2017. 4. 10. 20:10

1871 5 21,

파리코뮌(Paris Commune), ‘피의 일주일(Bloody Week)’ 시작

 

1870년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참패의 영향으로 1870 9월 제정(Imperial Government)은 몰락하고 공확국(Republic)이 선포되었다. 전쟁의 패배 와중에 프랑스를 침략하고 있는 프로이센에 맞서 싸우고자 한 세력은 바로 파리의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하였다.

 

부자 구에만 존속하고 있던 국민방위대(프랑스 혁명 시부터 존속하였던 파리 시민들의 민병대)는 빈민 구까지 확대되어 9월 말에는 35만 명으로 팽창하였고, 화포를 3,000문 가량 보유하게 되었다. 당시 파리를 포위한 독일군 병력은 총 15-20만 명이었다. , 프랑스 제국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반발, 프랑스 민중들이 일으킨 항쟁이 파리 코뮌(Commune De Paris = Paris Commune)의 첫 시작이다.

 

파리 시민들의 농성에도 불구하고 1871 1월 28 휴전조약이 체결되면서 그 해 2 12일 강화조약을 토의할 국민의회가 보르도에 설치되고 임시행정장관에 L.A.티에르가 임명되었다. 국민의회는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비준했으나 파리 시민은 오히려 항전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이 조약에 불만을 가졌다.

 

그렇게 쌓여가던 불만이 폭발한 것은 의용군인 국민위병의 처리 문제였는데, 안 그래도 불신을 받던 임시정부가 프랑스군의 예비군의 역할을 하던 의용군을 무작정 무장해제시키려 하자 파리 시민들과 의용군의 불만은 폭발했고, 의용군은 이를 거부했다. 더욱이 이들의 무장해제를 담당해야 했던 파리의 정규군이 이들과 손을 잡으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달았고, 3 26일 선거가 실시되어 파리 코뮌 정부(La Commune de Paris, 1871 3월 26 ~ 5월 28)가 수립되었다. 이는 프랑스 제4차 혁명이라고도 하며 프랑스 민중들이 처음으로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이다.

 

세계 처음으로 노동자 계급의 자치에 의한 민주주의 정부라고 평가되고 있는 파리 코뮌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책들을 실행에 옮겼으며, 단기간에 불과하였지만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소위풍기경찰의 영구적 폐지, 징집과 상비군의 폐지 및 국민방위대를 유일한 무장력으로 인정, 전쟁기간의 주택임대료 면제, 코뮌에 선출된 외국인의 집무비준, 정교분리, 잔인한 사형제의 상징인 기요틴의 파괴, 국수주의적 상징물인 방돔 (Vendôme) 광장의 원주 파괴, 제빵소의 야간작업 금지, 전당소 금지 등의 조치들이 이루어졌다.

 

혁신적인 정책들을 속속 발표하면서 한편에서는 파리 대주교를 살해하는 등 보수세력에 대한 과격한 투쟁도 서슴지 않아 곳곳에 유혈이 낭자했다. 적기(赤旗)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프로이센군과 프랑스 정규군은 무리하게 파리를 공격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랬다면 시가전으로 발전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시민과 국민의용군, 파리 주둔 정규군이 일치단결해있던 파리에 진입했다간 프로이센군에게 막대한 피해가 초래될 수 있었다.

 


Workers’ militia barricade of the Paris Commune. 1871

 

프로이센군과 프랑스 정규군은 대신 파리를 포위하고 고사시키기로 결심한다. 파리가 아무리 대도시였어도 도시 안에서 모든 물자를 충족할 수는 없었고, 식량부터 생필품까지 공급이 차단된 파리는 동물원의 동물들까지 잡아먹을 정도로 궁핍해졌다.

 

포위작전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자 5 21일 파리 정규군은 마침내 병력을 파리 시내로 진입시켰고, 시가전이 전개되면서 유명한 "피의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이 때 죽은 사람의 숫자는 대략 3만 명 정도로 잡는데, 파리 인구가 현재도 250만 명이 안 되니 이때는 더 적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인구의 1%가 넘는 사람들이 죽어나간 대학살극이었던 셈이다. 이 학살극 이후 코뮌 정부는 마침내 해체되었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