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1일

인도 라지브 간디 폭탄테러로 사망

산풀내음 2017. 4. 10. 20:20

1991 5 21,

인도 라지브 간디 폭탄테러로 사망

 

 

라지브 간디(Rajiv Gandhi, 1944-1991) 전 인도총리가 1991 5 21일 남부의 타밀 나두주에서 지방유세 도중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한 여성이 접근해서 인사하는 척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폭탄을 터뜨렸다.

 

 

이에 따라 지난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40여 년간 인도를 통치해온 네루 일가는 가족 중 3명을 비명횡사로 잃은 비운의 가문이 됐다. 라지브 간디는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외손자이자 인디라 간디((Indira Priyadarśinī Gāndhī, 1917-1984)의 아들이었다. 라지브 간디의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전 총리는 시크교도 분리주의자들을 과잉 진압한 것이 화근이 돼 1984 67세에 자신의 경호원인 시크교도들에게 암살당했다. 인디라 간디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의 둘도 없는 정치적 조력자였던 산제이 간디는 어머니보다 4년 앞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암살 원인은 싱할라인과 타밀인 사이의 분쟁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스리랑카에 인도가 평화유지군을 파견했기 때문이다. 이 폭탄테러는 인도 평화유지군의 파견에 불만을 갖고 있던 타밀 분리독립주의 무장단체 ‘타밀 타이거’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다누’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한 여성이 유세 중인 라지브 간디에게 접근, 그의 발을 만지는 행동으로 경의를 표하는 체하며 자신의 허리에 장착하고 있던 폭발물을 터뜨린 것이다. 이 여성은 스리랑카의 무장 반군 단체 '타밀엘람 해방 호랑이'(LTTE,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의 관련자였다.

 

인도 중앙정보부는 다누 외에도 많은 이들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보고했으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재판이 진행될 때쯤에는 이미 여러 명이 죽은 뒤였다. 결국 재판에 회부된 26명 중에서 사형이 최종 확정된 이는 4. 이들은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돼었다.

 

Velupillai Prabhakaran, the LTTE leader who ordered the assassination of Rajiv Gandhi, and who was killed by Sri Lankan forces in March 2009.

 

네루 전 총리의 외동딸이었던 인디라 간디는 당초 두 명의 아들 중 권력지향적 성향이 강했던 차남 산자이 간디를 후계자로 지목했었다. 그러나 산자이가 뜻밖의 죽음을 당하자 평소 정치에 무관심했던 장남 라지브 간디가 정계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왼쪽으로부터 인디라 라지브 간디(첫째), 간디(어머니), 산자이 간디(둘째)

 

자와할랄 네루가 영국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해인 1947년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64년 퇴임한 이후 그의 딸 인디라 간디와 외손자 라지브 간디가 총리를 지냈다. 이들의 성() '간디'는 인디라 간디가 페로제 간디와 결혼하면서 바뀐 것일 뿐,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와는 무관하다.

 

인도는 라지브 간디의 암살사건으로 정치적 혼란상태에 빠져들었고, 경제적으로도 파산직전까지 몰려 국정의 방향타를 잃고 혼란을 거듭했다. 이러한 국가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인도 국민의회당은 라지브 간디의 미망인인 소냐 간디에게 당 총재를 제안, 적극 권유했으나 그녀가 이를 거절. 인도 독립 1세대 정치인인 나라시마라오 전 외무장관이 임시총재로 그 역할을 대신했다. 2004년 현재 국민의회당 당수인 소냐 간디는 5 18일 총리지명 포기의사를 밝힌 바 있다.

 

Twenty-five years after the assassination, the movie will go on the floors on August 20, Rajiv’s birth anniversary, and Ramesh plans to release it in the cinemas on May 21, 2017, Rajiv’s death annivers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