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7일

일본, 우리 문화재 1,326점을 반환

산풀내음 2017. 4. 21. 20:45

1966 5 27,

일본, 우리 문화재 1,326점을 반환

 

일본에 빼앗겼던 우리문화재가 1965 6월에 체결된한일문화협력협정에 따라 한국으로 반환됐다. 1905년 이후 망국의 치욕을 안고 남의 땅에 넘어갔던 문화재 1324점은 61년 만인 1966 5 27일 김포공항을 통해 돌아왔다. 수리를 위한 삼국신라시대의 칼2점을 제외한 나머지 문화재들은 43개의 상자에 담겨 이날 오후3시 경복궁 국립박물관에 옮겨졌다. 일반에게는 7월에 공개됐다.

 

한일간의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돌아온 문화재는 신라 고구려시대의 도자기가 90 97, 고고자료 84 334, 석조미술품이 2 3, 한말에 수집된 도서852책 그리고 체신자료 20 36점들이며 이등박문이 명치천황에게 바친 고려자기 97점도 포함돼있다.

 

반환된 문화재 중 대표적인 것은 보물 452호 청자 거북모양 주전자 (청자귀형수주·靑磁龜形水注·고려 12세기)로 연꽃 위에 거북이 앉아 있는 모양으로 약탈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에서 귀한 자료로 평가되는 국보 제124호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도 반환되었다.

 

보물 452호 청자 거북모양 주전자()와 국보 제 124호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미국의 시사주간지 ‘Time’ 2002 1 4일자에 의하면, 일본이 19세기 말부터 일제강점기인 1945년까지 한반도에서 10만여 점의 문화재를 약탈해갔다고 보도했다. 타임은 이어 2차 대전 종전 직후 일본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정치적 고려에 따라 문화재 반환에 반대했으며 현재 한일 정부간의 공식적인 문화재 반환 협상은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사안이라고 지적, 일본 약탈 한국문화재 반환문제가 일본 한국 미국과 관련돼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Time’ 10만점이라고 보도한 것은 국내 문화재 관련 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론한 것. 많은 전문가들 역시 10만점은 넘을 것이라고 보고 있으나 구체적인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의해 약탈된 문화재의 반환 사례를 살펴보면, 1958년 한일 정부간 회담을 통해 삼국시대 귀고리 등 100여 점이,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각종 도자기 등 1300여 점의 문화재가 일본으로부터 돌아왔다. 이후 반환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가 90년대 들어 조금씩 반환이 이뤄졌다. 1996년 경복궁 자선당 건물 유구가 돌아왔고 데라우치 총독이 약탈해간 데라우치문고를 일본의 야마구치여대가 경남대에 기증했다. 1999년엔 개인 소장가가 고려 동종을, 2001년엔 역시 개인소장가가 문인석 65점을 한국에 기증했다. 2006년에는 추사 김정희 유품 2750점이, 2011년에는 조선왕실의궤 등 조선왕조 도서 147종이 반환되었다. 반환된 것 중 대부분이 민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고, 특히 90년대 이후는 더욱 그러하다.

 

 

Time은 “유럽에서는 나치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논의와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에선 반환에 관한 논의가 별로 없다”고 꼬집었다. 유럽에서의 문화재 반환 협상은 주로 독일과 2차 대전 중 독일이 점령했던 국가들(프랑스 등) 사이, 독일과 종전 후 독일에 주둔했던 연합국(러시아 등) 사이에 이뤄지고 있다. 전자는 독일이 약탈한 경우고, 후자는 독일이 약탈당한 경우다.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 중 약 200만점은 2차 대전 직후 전후 처리과정에서 원소유국으로 반환됐다. 그러나 독일의 일부 지역을 점령했던 옛 소련은 그 지역에 보관 중이던 약탈 문화재를 원소유국에 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이만이 트로이 유적에서 발굴한 프리아모스왕의 보물 등 약 20만점을 러시아로 약탈해 갔다. 90년대 들어 독일이 러시아에 반환을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거부했다.

 


일본이 약탈한 우리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