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25일

한국 최초의 월간 종합지 `개벽` 창간

산풀내음 2017. 5. 17. 20:51

1920 6 25,

한국 최초의 월간 종합지 `개벽` 창간

 

한국 최초의 종합 월간지 `개벽` 1920 6 25일 창간됐다. 편집인 이돈화, 발행인 이두성, 인쇄인 민영순으로 창간된 이 잡지는 국판 160면 내외의 국한문 혼용체였다.

 

 

개벽은 1920 6월부터 1926 8(통권 72)까지 6년간 매호 8,000-9,000부를 발행하였고, 평균 7,000부 이상의 판매량을 자랑하던 1920년대 전반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였다. 발행 금지 처분으로 1926년에 강제로 폐간되었던 개벽은 1934 11월에 속간호가 발간되었지만, 4개월 만인 1935 3월호(통권 4)를 끝으로 더 이상 발간되지 않았다. 해방 이후인 1946 1월에 다시 개벽의 복간이 이루어졌지만, 역시 제대로 발행되지 못하고 1949 3월호(통권 9)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천도교를 배경으로 발간된 탓에 일제에 대한 항쟁을 기본노선으로 삼았고,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개조와 민족문화 창달을 표방했다. 이 때문에 개벽은 창간호부터 압수되는 수난의 길을 시작했다.

 

1920년대까지 천도교는 일제 시기 대표적 종교이자 민족 운동 세력 중의 하나였다. 초창기 개벽에 실린 다수의 글도 천도교 청년회 간부이자 개벽사의 직원인 이돈화, 박달성, 김기전 등이 집필하였다. 그러나 개벽의 기사 중에서 천도교의 교리에 관한 것은 매우 드물었다. 개벽은 각종 주제에 관한 논설과 문학과 잡문 등이 실린 대중 종합지였다. 그리고 개벽의 필자들도 점차적으로 다양화되면서, 다양한 주제들이 개벽에 실렸다.

 

이에 더하여 대중 종합 잡지를 위한 개벽의 노력은 대중들과의 소통 가능한 형태의 다양한 기획으로 구현되었다. 독자투고나 지방통신란의 신설, 조선 10대 위인 투표, 전래 동화 모집, 일종의 답사 보고서인 조선 13도호의 발간 등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개벽에 대한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필자들이 논설과 만평을 통해 쏟아내는 현실 비판은 대중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고, 이는 개벽의 인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실제로 논설은 1920년대 발간된 개벽의 전체 기사에서 문학과 잡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논설의 내용은 대부분 사상 및 정치⋅시사에 관한 것으로 식민지 현실의 다양한 문제가 논설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이처럼 개벽은 현실 개혁 혹은 민족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개벽의 전체적인 경향은 1923~1924년을 기준으로 구분될 수 있다. 앞 시기에는 ‘개조론’ 혹은 ‘문화주의’와 관련한 내용이 많았다면, 이후에는 ‘계급주의’와 같은 사회주의와 관련한 글이 많이 소개되었다.

 

개벽은 일제의 수많은 방해 공작과 탄압 속에서도 시·소설을 비롯한 수많은 문학작품을 생산했다. 여러 작품들 중에서 특히 주목받은 것은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 현진건의 빈처(貧妻)’(1921) 등을 비롯한 소설과 김소월의 명시들이 있다. 김소월은 1922년 한 해 동안에만,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등 무려 30여 편을 발표했다. 또 김기진, 박영희 등이 들고 나온 새로운 문학이론 등으로 인해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926 6월호에는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가 항일 저항시로 유명한 그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다. 그것은 들도 빼앗기고 봄마저 빼앗긴 조선 사람들의 울분을 터뜨리는 내용이었는데, 이 시는 영락없이 검열에 걸려 이전에도 그랬듯이 다시 한 번 개벽은 판매를 금지당하고 압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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