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9월/9월 1일

일본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산풀내음 2016. 8. 7. 21:38

1923 9 1,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많이 시청해 주십시요.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7rWwDUwEXE&t=40s

 

 

1923 9 1일 오전 1158. 일본의 수도인 도쿄와 외곽 도시인 요코하마 인근인 간토(關東)지방에 진도 7.9의 대규모 강진이 일어났다. 당시 일본의 건물들은 대부분 목재로 지어졌고, 현대와 같은 지진에 견디는 내진 시스템도 없던 때여서 지진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지진 후 간토 지방은 총체적인 혼란에 빠졌다. 정부 조직이 마비되었으며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지진으로 인해 10만에서 15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  10 9천여 채의 건물이 전부 파괴되고 10 2천여 채는 반파 되었다. 도시의 3/4이 잿더미가 됐다.

 

내무성은 계엄 선포와 함께 각 지역 경찰서에 치안유지를 위한 지시를 내리는데 내용 중에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과 더불어 근거 없는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소문 중에 조선인들이 대지진으로 도쿄 일대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각지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고 폭탄을 던지며, 물건을 약탈하고 여성을 겁탈한다는 흉흉한 유언비어 등이 있었다. 불과 지진 발생 1시간 뒤부터 유언비어가 나돌기 시작했고 오후 3시경에는 조선인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근거 없는 소문은 당시 일본인들의 불안한 심리와 함께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에 곳곳에서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가차없이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일본도 등으로 무장하였고, 일부는 총기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우선 조선이 복장을 한 사람은 즉시 살해했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본인 복장을 한 경우에는 이를 식별하기 위해 조선인이 발음하기 힘든 十五円五十銭 (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과 ‘ぱぴぷぺぽ (빠삐뿌뻬뽀)’를 발음하게 하거나 ‘교육칙어’를 암송하도록 해 조선인으로 보이면 칼과 죽창을 마구 휘둘렀다. 이 때 조선인뿐만 아니라 조선인으로 오인 받은 중국인 등도 함께 살해 당했다.

 

여기에 내무성은 지방에 내려 보낸 ‘불령조선인(不逞朝鮮人) 단속’ 공문으로 군대와 경찰까지 동원돼 학살을 부추겼다. 일주일 동안 6,661명의 조선인들이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들이 스스로의 만행을 축소하기 위해 주장하는 숫자고 이보다는 최소 2배 이상 많을 것이다. 특히 원광대 사학과 김효숙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학살된 사람의 수는 2 4천명에 이른다.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학살은 잔인하였고, 정부는 방관에 더하여 부추기까지 했고 나아가 군경을 통해 직접 학살도 했다. 요코하마에서는 죄수들에게 총기를 주어 조선인을 살육시키는 일도 있었고, 당시 자경단원으로 활동했던 하야시 히데오는 육군소장에게너희들은 일본도와 단도를 들고서 경계를 서다가 조선인이 보이면 닥치는 대로 베어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9 2일 오전, 교도쿠에 파견된 나라시노 기병 제 15연대 소속 병사인 에츄우야 리이치는 그의 수기인 ‘관동대지진의 회상’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오후 2, 가메이도에 도착하자 피난민들이 홍수처럼 넘쳐났다. 장교는 기차의 안팎을 조사하며 조선인들을 골라서 모두 열차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바로 칼날과 총검을 사용해 조선인들을 죽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일본인 피난민들은 원수 조선인을 모두 죽여라, 만세! 하면서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리 연대는 그 날 저녁부터 밤중까지 피의 잔치를 벌이며 조선인 사냥을 시작했다.”

 

그러나 점차 자경단의 만행이 도를 넘어서 공권력을 위협할 정도가 되어 체제 전반의 혼란 가능성까지 엿보이게 되면서 뒤늦게 경찰과 군부가 학살 저지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후였다. 자경단의 살상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상당수는 암매장되었다.

 

 

 

 

 

 

 

 

 

 

 

 

 

 

 

 

 

 

어린 아이도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관동대지진 후 미국에서는 모금운동이 일어났다.

 

 

 

'역사속에 오늘, 9월 > 9월 1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KAL 007기 소련기에 피격  (0) 2016.12.13
국회의사당 준공  (0) 2016.12.13
리비아, 카디피 쿠데타로 집권  (0) 2016.12.13
독일, 폴란드 침공  (0) 2016.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