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7일

노태우 대통령,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발표(7ㆍ7선언)

산풀내음 2017. 6. 4. 11:06

19887 7,

노태우 대통령,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발표(77선언)

 

노태우 대통령은 1988 7 7 1. 남북한 동포간의 상호교류 및 해외동포들의 자유로운 남북왕래 2. 이산가족 교신, 상호방문 주선 3. 남북한간 물자거래, 문호개방 4. 우방국과의 북한무역 불반대 5. 대결외교 지양, 국제무대 협력 6. 북한은 미일, 한국은 중소와의 관계 개선 등 6개항을 골자로 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는데 이를 77선언이라 한다.

 

, 지금까지의 북한과의 체제우위적 대립관계를 탈피, 선의의 동반자관계로 발전시키며 또 다른 체제로 인정, 남북한이 상호교류를 통해 사회 경제 문화 부문에서 공동체로 통합해 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공동체로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통일을 실현한다는 통일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1988 7월 노태우 대통령 7.7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의 가장 큰 의미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 있었다. "북한을 경쟁과 대결이라는 적대적 대상이 아니라 통일을 위한 동반자, 즉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 선언은 북한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에 앞서 남한을 스스로 어떤 존재로 보느냐에 있어서 획기적 전환을 담은 것이었다. 남한의 국가권력이 북한과의 대결 주체로서 존재 의미를 가진다는 40년간의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이 선언에 들어 있었다.

 

1948 8월과 9월에 각각 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상대방을 '국토 일부를 참절한 반역도당'으로 간주하였다. 남쪽 헌법에는 대한민국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되었고, 북쪽 헌법에는 수도가 서울로 되어 있었다.

 

7.7선언은 냉전 종식을 선포한 몰타선언보다 17개월 앞서 나온 것이다. 당시 한국사회에서는 냉전 종식의 기미가 아직 느껴지지 않고 있었으나 소련과 동유럽에서는 체제 붕괴를 향한 변화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올림픽대회만 하더라도 제22회 모스크바대회와 제23회 로스앤젤레스대회를 '반쪽 대회'로 만든 동서대립이 1988년에는 무너져 있었기 때문에 제24회 서울대회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