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14일

독일정부 `단종법(斷種法)` 공표

산풀내음 2017. 6. 8. 21:14

19337 14,

독일정부 `단종법(斷種法)` 공표

 

1929년 이후 대공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독일정부가 19337 14일 일명 유태인 말살 정책인 `단종법(斷種法, Compulsory sterilization or Forced sterilization)`을 공포했다. 정식명칭이 `유전질환자 자손 방지를 위한 법률 (Law for the Prevention of Hereditarily Diseased Offspring)`인 이 단종법은 `신체, 정신상의 악질 유전`이 예상되는 병을 정해, 이 병에 감염된 당사자가 신청하면 우생(優生, 인종개량)재판소가 단종수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신청을 당사자 이외의 사람 즉, 해당자를 수용하고 있는 병원이나 형무소 감독관 등도 제출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나치 독일시대 사용된 우생학 선전자료. 부적격자의 출산율이 높아지면 인구가 질적으로 퇴보한다고 선전했다.

Choosing the Right Spouse

This Is What You're Carrying This pro-eugenics Nazi poster says that the ordinary citizens are bearing the costs of looking after the 'genetically sick'.

 

이 단종법은 히틀러가 모든 인류의 악이라고 비난한 유태인에게 제일 먼저 적용됐다. 나치스는 유태인을 `극히 위험스런 외부의 적`으로 조작함으로써 독일인의 통일성을 강화하는 한편, 유태인을 무력, 무능력한 자로 규정해 이들을 추방하거나 공장과 수용소에 보내 강제 노동에 종사케 했다. 이유인 즉 그들의 재산과 직업을 독일인이 차지하게 될 수 있다는 이익 계산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 단종법 시행 후, 1년간에 걸쳐 독일에 제출된 단종신청은 남녀 약 반반씩 84,525건이었고 이 가운데 56,244건이 단종명령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1940 3월 나치스의 단종법을 모방한 `국민우생법`을 만들지만,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이 법으로 40만 명 이상이 단종수술을 강요당했고, 10만 명은 안락사 되었다. 2년 뒤인 1935년에는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독일인과 차별하는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하면서 유대인 말살정책인 ‘홀로코스트’의 길을 열었다.

 

A broken and twisted mound of emaciated corpses lay strewn in one of three open burial pits. At the liberation of Belsen on 15 April 1945, British troops were faced with over 10 000 dead inmates who required immediate burial to halt the spread of typhus and other diseases which were rampant in the camp. Former SS (Schutzstaffel) guards were formed into work squads to bury the bodies and face responsibility for the victimization of their prisoners. Belsen, one of many Nazi concentration camps of the German Third Reich, was used as an instrument of genocide against Jews and those of other nationalities and categories.

 

우생학(Eugenics)은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에 의해 탄생했다. 갈턴은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이 발표된 뒤 6년 후인 1865년 교배기술로 동식물의 품종을 개량하듯 최고의 자질을 가진 인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영국 상류층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현재 지위는 대대로 이어진 유전적 우월성에 기초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그처럼 선별적인 번식을 통해 인간 종을 진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보다 조금 앞선 1880년에 미국의 한 의사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중에 나팔관을 묶는 시술을 처음으로 시행했다. 그리고 1894년에는 남성에 대한 불임 시술로 거세를 대신할 수 있는 정관 절제술이 소개되었다. 우생학 프로그램의 실행적 토대가 마련된 셈이었다.

 

우생학을 주창한 프랜시스 골턴

 

인간의 유전인자를 향상시키고 인간 사회에 부적합한 열등한 유전인자를 없앰으로써 골치 아픈 사회문제들을 척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당대의 저명한 인물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았다. 1912년에는 제1차 국제우생학대회가 찰스 다윈의 아들인 레오나드 다윈을 회장으로,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을 명예 부회장으로 해서 런던에서 열렸다.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우생학 프로그램을 합법화한 곳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이다. 1907년 인디애나 주는 범죄자, 얼간이, 저능아, 강간범들은 단종시킬 수 있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2년 뒤 위헌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집행이 중지되고, 1921년에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니까 이 시절이라고 모두가 우생학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생물학자 토마스 헌트 모건은 실험을 통해 빨간 눈을 가진 초파리 계보에서 하얀 눈을 가진 초파리가 나오는 현상을 확인하고 유전적 전달체계가 우생학자들의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고, 종교계 특히 가톨릭 쪽에서의 반발이 거셌다.

 

이런 와중에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1924년 간질환자, 저능아 등에 대해 불임시술을 강제하는 단종법이 제정되었고, 1927년에 벅 대 벨사건이 발생한다. 캐리 벅(Carrie Buck)이란 여성은 어머니가 정신박약자 이었고 어릴 때 입양이 되었다. 17세 때 입양된 가정에서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조카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양부모는 그녀를 어머니가 있는 수용소로 보냈다. 수용소 측은 버지니아주의 단종법에 의거해 벅에 대해 불임수술을 시도했고, 이를 둘러싼 논란은 법정으로 옮겨갔는데 소송 명칭은 벅과 수용소장인 존 벨의 이름을 딴 `벅 대() (Buck v. Bell)' 소송으로 붙여졌다.

 

미국 버지니아 단종법의 첫 희생자 Carrie Buck와 어머니 Emma Buck

 

롬바르도 교수의 추적에 의하면 이 소송은 애초부터 수용소 측이 단종법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려는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법정소송으로 비화시킨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벅의 국선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어빙 화이트헤드 변호사가 단종법 찬성자로 간질환자 수용소장을 지냈고, 수용소 측 변호사와 친구인 점 등으로 볼 때 한마디로 `짜고 치는' 재판의 성격이 강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미 대법원은 1927 "3대에 걸쳐 저능아라면 충분하다"며 버지니아주의 단종법이 다수의 안전과 복지를 추구한다는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결국 벅은 버지니아주 단종법의 첫 희생자가 됐다.

 

1974년에 공식 폐지된 이 법에 의해 불임시술을 당한 버지니아 주민만 8,300명에 이른다. 미 의회는 또 앵글로색슨족의 이민은 장려하는 반면, 유대인과 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인의 이민을 제한하는 존슨이민법(1924)도 제정했다.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 각국에서도 단종법이 속속 도입됐다. 그리고 우생학이 초래한 인류사의 비극은 독일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Eugenics supporters hold signs criticizing various "genetically inferior" groups. Wall Street, New York, c. 1915.

Women protesting the "Sterilization of Mothers" in 1971. (Photo from Southern Conference Educational 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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