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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패킷교환방식 ‘아르파넷(ARPANET)’ 등장, 인터넷의 효시

산풀내음 2016. 8. 10.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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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패킷교환방식 ‘아르파넷(ARPANET)’ 등장, 인터넷의 효시

 

컴퓨터 통신망은 곧 점점 고도로 발전하면서 마침내 세계적인 규모의 인터넷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인터넷은 1960년대에 미국 국방부의 한 부서였던 첨단연구프로젝트국(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에서 연구하기 시작한 아르파넷(ARPAnet)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960년대부터 미국 국방부는 핵전쟁을 비롯한 중대한 전쟁이 발생할 경우에도 컴퓨터들이 서로 작동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찾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컴퓨터 네트워크의 개발에 착수했다. 즉 여러 컴퓨터 통신망 가운데 하나가 적의 공격으로 파괴되더라도 전체 통신 시스템에서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통신 체제의 구축이 시급한 문제로 부각되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터넷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아르파넷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ARPA 1958년 스푸트니크 충격 이후 미국 내에서 국방 관련 첨단 연구를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시킬 것을 목적으로 국방부 산하에 설립된 기관이었다. ARPA는 그 자체로는 연구소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대신 학교와 기업의 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주고, 그들과 맺은 연구 계약을 관리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들로 이루어진 기관이었다. 1960년대부터 이 기관에서는 행동과학, 물성과학, 탄도 미사일 개발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지원해 왔다.

 

1962년부터 ARPA는 정보 분야를 지원하기 위한 부서인 정보처리기술실(IPTO, Information Processing Techniques Office)을 설립해서 컴퓨터 과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IPTO는 컴퓨터 그래픽, 인공지능, 시간 공유 운영 시스템(Time-sharing Operating System), 컴퓨터 네트워크 등 컴퓨터와 관련된 최첨단 분야를 지원했으며, 실제로 이들 분야들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IPTO의 초대 책임자는 릭라이더(J.C.R. Licklider)였는데, 그는 하버드 대학과 MIT의 링컨 연구소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BBN(Bolt Beranet and Newman) 회사에서 정보 시스템과 공학 심리학 담당 부사장으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이미 1960 '인간-컴퓨터 공생'(Man-Computer Symbiosis)에 관한 논문 집필했던 그는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 문제와 컴퓨터 네트워크의 가능성에 대해서 강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릭라이더의 후임은 항공 산업 분야와 NASA의 시스템 공학자로 일했던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였다. 그 역시 릭라이더가 추구했던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는 컴퓨터라는 생각에 크게 동감하던 인물이었으며, 컴퓨터 시스템에서 데이터 자원을 공유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한편 1964RAND 회사의 폴 바란(Paul Baran)은 『분산적 통신에 관해서(On Distributed Communications)라는 책자에서 기존의 전화나 모뎀 방식이 채택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통신 방법을 제안했다. 바란의 연구는 미 공군이 RAND 회사에게 소련의 핵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통신 시스템을 개발해 달라는 요구에 부응해서 나타난 것이었다.

즉 전술적인 통신에서 '생존 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중요시되면서 기존의 전화에서 많이 사용하던 회로 교환(Circuit Switching) 방식은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냈고, 이에 따라 패킷 교환(Packet Switching)이라는 새로운 통신 방식이 제안되게 되었던 것이다.

 

패킷 교환 방식에서는 데이터가 한 번에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작은 부분으로 나눈 다음 각각에 데이터 앞에 상대방 목적지의 주소를 기록해두어 패킷으로 목적지에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 패킷 교환 방식에 대해서 전화 분야에 익숙해 있었던 기존의 통신 분야 기술자들은 이 기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많은 저항을 보였다. 하지만 '생존 가능성' 개념이 통신 시스템 구성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면서, 바로 이 방식이 미국 국방부의 컴퓨터 통신 시스템인 아르파넷을 구성하는 골격으로 채택되게 된다.

 

1965년 테일러는 MIT 링컨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로렌스 로버츠(Lawrence Roberts)를 채용했다. 로버츠는 컴퓨터 네트워크 방식과 그에 수반되는 신호 교환 방식에 대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바란의 책을 읽고, 패킷 교환 방식과 이 방식이 채택하고 있는 분산적 통신 토폴로지를 채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이런 분산적인 컴퓨터 통신망을 채택하게 된 것도 이 방식이 미 국방부에서 요구하는 전략적 통신망의 필요조건이었던 생존 가능성 조건에 가장 합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1966 IPTO의 책임자인 로버트 테일러는 ARPA와 계약을 맺은 컴퓨터 연구소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가 새로운 컴퓨터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했던 1차적인 목적은 우선 멀리 떨어져 있는 연구소들의 컴퓨터 재원을 공유함으로써 계산 비용을 절감하는 것과 컴퓨터들 사이에 데이터를 서로 용이하게 전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8년 테일러의 후임인 로렌스 로버츠는 이 계획을 보다 구체화시켜 나갔고, 이로부터 아르파 컴퓨터 네트워크(ARPA Computer Network) 혹은 간단히 말해서 아르파넷(ARPANET)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1969년 아르파넷 사이에서는 최초의 패킷 교환이 시작되었다.




Pre-network packet switching routing telegrams by tearing paper tape

A group of BBN programmers, the builders of Arpanet.

 


이어 1970년부터 1972년까지 IMP(Interface Message Processor)를 비롯한 네트워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체계적인 시험 가동이 시작되었다. IMP란 초창기 아르파넷을 구성하던 중요한 하드웨어로서 주컴퓨터를 대신해서 전화를 걸고, 에러를 점검하며, 신호가 주어진 경로를 통해서 확실히 전달되었는가를 확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핵심 프로세서였다. 마침내 1972 10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 1회 국제 컴퓨터 통신 회의에서 훗날 인터넷으로 발전해서 전세계를 연결하게 될 아르파넷이 대중 앞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1973년 이후 아르파넷 팀은 서로 다른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우선 프로그램 매니저인 빈튼 서프(Vinton Cerf)로버트 (Robert Kahn)은 아르파넷과 위성 및 무선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는 일련의 네트워킹 프로토콜을 발전시켰다. TCP/IP라고 불리게 된 이 통신 프로토콜은 나중에 인터넷을 구성하는 주요 프로토콜이 되게 된다. 초기 TCP(Transmission Control Protocol)에는 전송 방법을 통제하는 기능과 아울러 주소를 찾아가는 기능까지 포함되어 있었지만, 1980년을 전후해서 주소를 찾아가는 기능은 IP(Internet Protocol)라는 새로운 프로토콜에서 수행하게 된다.

 

인터넷의 발전에 있어서 커다란 획을 그은 또 다른 역사적 사건은 무선 및 위성 통신 데이터 전송을 가능하게 한 알로하넷(ALOHANET)의 등장이었다.

1970년대 초 하와이 대학의 에이브램슨(Norman Abramson) 연구팀은 하와이의 여러 섬을 연결하는 데에는 기존의 케이블을 이용한 전화선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고, 무선과 위성 통신을 이용해서 데이터를 전송할 계획을 세웠다.

1970-71년 아르파넷의 개발을 담당했던 IPTO(Information Processing Technique Office)의 로버츠는 이 패킷 무선 네트워크(packet radio network)을 아르파넷에 이용할 생각으로 이 계획을 지원했다.

 

알로하넷은 하와이의 7개 대학 및 수많은 연구소들을 호놀룰루 근처의 대형 컴퓨터와 연결하게 만들기 위한 네트워크였다. 여기에는 MIT의 로버트 메트컬프(Robert Metcalfe)가 참여했는데, 그는 이 과정에서 이더넷(Ethernet)이라는 근거리 통신망에 핵심적인 시스템을 창안하기도 했다.





알로하넷의 경험에 자극을 받아서 IPTO의 로버트 칸은 ARPA도 독자적인 패킷 무선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1975년 가을에는 대서양 패킷 위성 네트워크(Atlantic Packet Satellite Network) 혹은 SATNET이 구축되기 시작하는 데, SATNET에는 영국 우정국(British Post Office)과 노르웨이 무선국(Norwegian Telecommunication Authority)이 함께 참여해서 네트워크 연구와 지진에 관한 자료를 교환했다.

 

한편 아르파넷은 1970년대에 출현된 이더넷(Ethernet)과 이를 바탕으로 한 근거리 통신망과 연결되어, 1980년대 초에 이르면 이 이더넷과 연결된 수많은 워크스테이션들이 세계 도처에 나타났다. 더욱이 이들 워크스테이션들은 1969년 벨전화연구소에서 만들어진 뒤 지속적인 성장을 해 오던 컴퓨터 운영 체계인 UNIX를 사용하게 되면서 LAN은 더욱더 강한 네트워크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또한 1980년 미 국방부는 이 TCP/IP를 국방부 네트워크의 공식적인 기본 프로토콜로 정했으며, 1983년에는 버클리 유닉스 버전에서 이 TCP/IP가 새롭게 포함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TCP/IP 프로토콜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유닉스는 대학가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운영 체계(Operating System)였기 때문에 TCP/IP가 학술 통신망의 기본 프로토콜이 되게 되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상업용에서도 이 통신 프로토콜을 사용하게 된다.

 

결국 1983년 초기의 이더넷을 약간 변형시킨 형태로 LAN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1973년 이후 발전한 인터넷의 기본적인 통신 프로토콜 TCP/IP 1983년에 이르러 인터넷 사용자들의 합의에 의해서 아르파넷의 유일한 통신 프로토콜이 되면서, 이때부터 소위 진정한 의미의 '인터넷'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1983년 이후 인터넷 프로토콜이 표준화 된 이후 인터넷은 전자 메일(E-Mail), 파일 전송(FTP), 고퍼(Gopher), 네트워크 뉴스, 공개 게시판 등등 다양한 용도로 주로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수많은 학술 전산망을 통해 퍼져 나갔다. 1985년에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NET 구축할 때에 바로 이 ARPA의 인터넷 프로토콜인 TCP/IP를 통신의 기본 프로토콜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NSFNET는 인터넷의 기간 네트워크(backbone network) 역할을 하게 되었고, 더욱 급속도로 대중화되어 갔다.

 

인터넷이 단순한 문서 정보 교환을 넘어서 멀티미디어 정보통신으로 범위를 넓히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1989 스위스의 CERN과학자들에 의해서 창안월드-와이드-(World Wide Web)의 출현이었다. 즉 월드-와이드-웹에서는 http라는 새로운 응용 프로토콜을 사용해서 하이퍼 문장을 마우스로 간단히 눌러 전세계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인터넷은 보다 대중에게 가까워졌으며, 음성, 동화상 등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멀티미디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출처 : 포항공대 임경순 교수, “과학사 개론중에서,

http://science.postech.ac.kr/hs/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