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27일

최초의 제트여객기 `코멧` 비행 성공

산풀내음 2017. 6. 18. 06:45

19497 27,

최초의 제트여객기 `코멧` 비행 성공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 `코멧(Comet)` 1949 7 27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코멧 1호기는 7 25일에 완성돼 26일 지상주행 테스트를 거친 후 마침내 이날 최초비행에 성공했다. 제트기는 일반적으로 프로펠러기보다 훨씬 더 높이, 더 빨리 날 수 있다. 프로펠러기로는 힘든 1만 미터에서 1 5천 미터에서 비행하며, 특히 음속을 넘는 속도는 프로펠러 추진으로는 힘들다. , 제트기라고 해서 모두 초음속으로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 군용기가 초음속으로 날아다니며, 과거 여객기도 초음속이 가능한 기종이 있었지만 현재는 퇴출되었다.

 

Comet 1 prototype (with square windows) at Hatfield, Hertfordshire in October 1949. It features square-shaped windows, which caused two hull-loss accidents in 1954.

 

제트기가 실제로 실용화 된 것은 1940년대였다. 영국의 프랭크 휘틀과 독일의 한스 폰 오하인이 각각 독자적으로 제트 엔진을 발명했다. 제트엔진에 의한 최초 비행은 1939년에 하인켈 He 178을 이용해서 이루어졌다. 영국 쪽에서는 글로스터 E.28/39에 휘틀의 제트엔진을 탑재하여 1941년에 첫 비행이 있었다. 최초의 실용기체는 독일의 메서슈미트 Me262로서 2차 대전 막판에 만들어져 전투기로 활약했다. 최초 비행 자체는 1941년이었지만 대량 생산은 1944년에 이루어졌고, 따라서 전쟁에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늦은 등장이었다.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는 영국의 드 해빌랜드사(De Havilland)가 설계, 제작한 코멧이다. 코멧은 길이 28.35m, 35.05m의 날씬한 유선형 기체였다. 주날개에 터보제트엔진 4기를 장착하고 총중량 48톤이나 되는 비행기가 시속 760km의 순항속도로 최장 4000km나 비행이 가능했다. 4명의 승무원과 36명의 승객이 별도의 장비 없이 고도 12m 상공에서 쾌적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195119, 코멧 MK1의 첫 양산형 기종인 G-ALYP가 영국항공(BA, British Airways)의 전신인 영국해외항공(BOAC, 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에 납품되었고, 1952 5 2일 런던∼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정기항공 노선에 첫 취항을 하였고 시간은 6시간 40분 소요되었다. 영국은 그야말로 경사를 만났다. 항공산업에서 미국을 누르고 우위를 점한 것은 영국민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때까지 기상상태를 보아가며 저고도를 운항하던 프로펠러기에서 날씨에 별로 구애 받지 않는 제트기로 고고도를, 그것도 고속으로 날게 됐으니 말이다.

 


 

1953년에는 코멧 MK2가 나왔고 미국이나 일본, 인도,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장거리국제선을 운항하는 각국의 국적항공사들로부터 50기 이상 주문 받기도 했다. 더욱이 코멧 MK3는 항속거리가 늘어나서 대서양횡단비행도 가능해 당대 최대항공사 팬암항공(Pan American), 캐피탈항공 등 미국의 항공사로부터 발주를 받는 등 양산체제에 들어간 드 하빌랜드는 전도양양(前途揚揚)하기만 했다.

 

Oct. 4, 1958: ‘Comets’ Debut Trans-Atlantic Jet Age

Two DeHavilland Comets depart London and New York, each bound for the other city. Flying for the 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 the two aircraft complete the first trans-Atlantic jet passenger service, dramatically reducing the travel time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취항한지 1년 동안 3기의 이착륙시의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사망자가 없었기에 고속항공기에 익숙하지 않은 조종사의 실수로 치부되었다. 1953 5 공중분해로, 1954에는 잇달아 2건의 공중폭발사고가 1954 1 10일과 4 8일 각각 발생하면서 문제는 심각해졌다. 당시 처칠(Winston Churchill) 수상은 항공기 사고소식을 듣고 비용과 인원에 개의치 말고 사고 원인을 반드시 밝혀내라!”라며 호통을 쳤고 사고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거국적으로 움직였고, 비행기잔해를 찾는데 해군력을 동원하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처칠 수상의 사고원인 규명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일부 언론들은잉글랜드뱅크 금고가 바닥나는 한이 있어도.....”라는 과잉표현을 쓰기도 했다.

 

 

사고조사 결과, 종전 여객기에 비하여 훨씬 높은 고도를 비행하던 코멧은 지상의 높은 기압과 고공의 낮은 기압을 자주 겪게 되어 동체가 신축과 팽창을 반복하여 피로가 쌓이게 되었는데, 유리창을 사각으로 설계하여 모서리 부분에 하중이 걸려서 균열 발생하여 공중에서 폭발하게 되었다. 이 사고 이후 항공기 외피 한가운데 뚫린 부분은 모서리가 선 사각형은 피하고 대개 원형이나 끝이 둥글게 처리된 사각형을 사용하게 되었다.

 

몇 건의 연속된 사고를 일으킨 후 코멧은 1954년 잠정 비행이 중단되었다. 구조적 결함을 보완하여 1958 10 4일 코멧 4를 시장에 선보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였다. 대신 보잉 707 1957 12 20일 초도비행에 성공하면서 아메리칸 항공아메리칸 항공에서 본격적인 오더를 넣었고 1958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항공사에 인도되기 시작하였다.

 

7071954 제트엔진 버전의 군용수송기 겸 민항기의 프로토타입으로 제안된 367-80을 모태로 하고 있다. 사실 보잉은 군용기 시장에서 재미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이 또한 미공군의 발주를 노리고 만든 것이었고 성과도 이루어냈다. 민항기 시장에서는 원형기 367-80의 동체가 너무 좁다는 거이 문제였는데 계속된 개발을 통해 동체를 점점 확장시킨 결과 여러 항공사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58년 이후에는 제트여객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The first production Boeing 707 is rolled out of the final assembly plant at Renton, Washington, 28 October 1957. (Seattle Post-Intelligenc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