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8월/8월 4일

남산 안기부청사 철거

산풀내음 2017. 6. 29. 20:02

1996 8 4,

남산 안기부청사 철거

 

1961년 창설한 중앙정보부 본청은 원래 동대문구 이문동(실제 행정구역은 성북구 석관동 산 1-5 의릉터)이었다. 남산 중턱(중구 예장동 4-5)에는 대공·국내 정치를 다루는 부서가 입주했다. 1972년 남산 본관이 준공하면서 본격적으로 남산시대를 맞은 중앙정보부는 1981년 이름을 국가안전기획부로 바꾼 뒤로도 계속 남산을 본거지로 삼았다. 1995년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안기부 본청이 옮기면서 '남산시대' 23년 만에 막을 내렸고, 남산에 있던 안기부 건물 소유권은 서울시로 넘어갔다.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옛 안기부 청사 제1별관이 1996 84일 오전 725꽈꽝하는 굉음과 함께 발파 해체됐다. 지상 5, 연면적 781평 규모의 안기부 제1별관 건물은 315곳에 설치된 27㎏의 화약이 18단계의 폭발을 거치며, 왼쪽부터 차례로 가라앉기 시작, 불과 5.5초 만에 3m높이의 건물 잔해 더미로 변했다.

 

외인아파트 철거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경향신문사 제공 =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남산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외인아파트를 1994년에 폭파 철거하였다.

안기부 청사 철거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경향신문사 제공 =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안기부 청사 제1별관이 폭파 철거되었다. 안기부 청사를 철거한 것이나 공원용도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은 역사 기억 지우기 논란을 낳기도 하였다.

 

"남산의 경관을 살리는 동시에 음습한 구시대 유물을 청산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하나"라며 1994년 실시된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에 이어 안기부 청사 제1별관을 철거했다. 상당수는구시대 청산 차원에서 안기부 건물을 철거하고 남산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반겼다. 그러나 한편에서는아직도 오래 쓸 수 있는 건물을 많은 예산을 들여 없앨 필요가 있느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일부 시민단체들과 사무실 부족에 시달리는 직원들은아직도 내구 연한이 남아있는 멀쩡한 건물을 활용하지 않고 이벤트성 행사를 위해 때려부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했다. 결국 이 후의 계획은 시행되지 못했다.

 

남산 산책길로 이어지는 이면 도로를 따라 오밀조밀 모여 있는 안기부(구 중앙정보부) 건물들은 대부분 리모델링을 통해 변모하였고, 내막을 알지 못하면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현재는 서울시 남산 별관(지하조사실로 유명한 안기부 6별관), 서울유스호스텔(안기부 본관), 서울 소방방재본부, 서울시 도시안전본부(학원 사찰 담당의 제5별관), 교통방송(TBS)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tbs 교통방송, 소방방재본부, 도시안전본부, 서울유스호스텔

 

1996년도의 계획이 무산된 후, 2009 3,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는남산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안기부 건물을 모두 없애려는 계획이었다. 유스호스텔과 도시안전실(당시 균형발전본부)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남산 별관, 소방재난본부, 교통방송을 철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번에는 재야 단체들이 반대에 나섰다. 인권단체들은 안기부 본관이었던 유스호스텔 자리를 중심으로 이 근방을 인권기념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어두운 과거를 상징하는 건물일수록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히틀러 유대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를 보존한 독일을 비롯,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외국에도 불행한 역사를 기념관으로 만든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즈음 학계·시민단체로 구성된역사를 여는 사람들 ㄱ’(대표 한홍구)은 통감 데라우치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몰래 숨어 한·일병합 조약을 맺은 장소가 남산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통감관저 터가 발견되면서 남산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었고 남산 건물을 철거하려던 오세훈 전 시장의 계획도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