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9월/9월 5일

검은9월단, 뮌헨올림픽에서 인질극

산풀내음 2016. 8. 14. 23:42

1972 9 5,

검은9월단, 뮌헨올림픽 인질극

 

20회 뮌헨 올림픽이 종반을 향하던 1972 9 5일 새벽 4 30, 밤새 선수촌 밖 유흥가에서 놀다 돌아온 캐나다 선수 몇 명이 월장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 그들은 담을 넘으려는 순간 자신들처럼 선수촌에 몰래 들어가려던 젊은이 8명을 발견했다어둠 속에서 그들의 얼굴 생김이나 인종을 구별하기는 어려웠지만, 다른 나라 소속 선수들인 것 같았다. 몇 사람은 어깨에 묵직한 더플백을 메고 있었다. 미국 선수들은 이들의 월장을 도와준 뒤 잘 자라는 인사까지 해주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8명은 사전에 위치를 파악해놓은 이스라엘 선수들의 아파트 숙소로 접근했다. 이들은 더플백에서 기관총을 꺼내든 뒤, 미리 훔친 열쇠로 이스라엘 선수 아파트 숙소 두 곳의 문을 따고 급습했다.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BSO, Black September Organization)’ 소속의 무장단원 8명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한 것이었다. AK-47 자동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이들은 2명을 현장에서 사살하고 9명을 인질로 잡았다. 화해와 축제의 장이어야 할 올림픽이 졸지에 공포의 무대로 변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구금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정치범 236 명과 일본과 서독 출신 적군파 요원들을 4시간 내로 석방하고 안전한 탈출로를 보장하라는 요구와 함께, 만일 당일 9시까지 이 같은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30분 간격으로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검은 9월단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내 알파타에서 분리된 극좌파 게릴라 조직으로, 아랍계 게릴라가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0 9월을 의미한다. 그 이름은 아랍 게릴라 4명이 1970 11월 당시 요르단의 탈 총리를 이집트 카이로의 한 호텔에서 암살하면서 스스로 검은 9월단이라 칭한 데서 시작됐다.

 

당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는 검은 9월단의 요구조건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정부와 협의 했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은 강경했다. 이스라엘 골다 메이어 총리는 절대 테러리스트의 요구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다만, 인질 전원을 석방한다면 테러리스트들이 제 3국으로 가는 것은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더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통한 사태 해결을 위해 서독에게 양해를 구했으나, 서독측은 자신들이 대응할 것이라며 거부했다.

 

이스라엘의 단호한 대응으로 이튿날인 6일까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무장단원들은 아랍국가로의 탈출을 모색했다. 그리고 인질범은 이집트 카이로로 날아갈 항공기를 요구했고 독일 정부는 이 요구를 수용했다.

 

6일 밤 10시쯤 인질범과 인질들은 두 대의 헬리콥터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제공될 비행기 안에는 독일 군인들이 타고 있었고, 공항 곳곳에는 저격 전문 스나이퍼들이 배치돼 있었다. 독일 군경찰 당국은 이들이 헬리콥터에서 내려 비행기로 갈아타는 순간 인질구조작전을 펼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독일 군경은 테러진압경험이 전혀 없었다. 무선통신장치조차 장착하지 않은 독일 저격병들이 신호착오로 사격을 시작하자, 인질범들은 헬기 한 대에 폭탄을 투척하고 자폭하는 동시에 선수 9명을 모두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군경 2 명도 사망했다. 결국 인질 전원과 5명의 게릴라가 현장에서 죽고 3명은 생포로 끝이 났다. 실패한 구조작전이었다생포된 3명도 1029일 서독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하이재킹한 무장단체의 요구로 석방돼 이스라엘을 격분시켰다



 당시 사망한 이스라엘 선수들

 

사건 발생 직후 뮌헨 올림픽의 모든 경기는 중단되었다. 인질 사망 이후 주경기장에서 추도식을 가졌고 그 이후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선수단은 동료의 주검을 가지고 전원 귀국하였다. 대회 포기 의견도 나왔지만 수 년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없단 이유로 인해 IOC와 독일정부는 재개를 결정하였다.

 

이후 자국 선수들의 학살에 분노한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는 즉각 보복에 돌입했다. 이른바 '신의 분노' 작전이다. 뮌헨 학살 계획에 연루된 팔레스타인 인들과 검은 9월단 요인들을 암살하기 위해 이스라엘 비밀정보원 모사드의 정예 멤버들이 암살단원으로 발탁됐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내부정보원과 유럽의 친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의 도움으로 암살 대상 리스트를 작성했다. 1순위는 이탈리아 PLO의 책임자이자 검은 9월단 간부로 알려진 와델 아델 자와이터였다. 그는 10 16일 이탈리아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PLO 정보책임자이자 뮌헨사건 모의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아테프 베이소가 암살당한 것을 마지막으로 꼭 20년 동안 이어져 온 '신의 분노' 작전은 사실상 종결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