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8월/8월 28일

6.25발발로 제1차 화폐개혁 단행

산풀내음 2017. 7. 21. 09:44

19508 28,

6.25발발로 제1차 화폐개혁 단행

 

1950 8 28, 이승만 정권은 조선은행권을 폐지하고 한국은행권을 도입한다는 통화조치를 발표하였다. 1차 화폐개혁이 단행됐다. 화폐개혁은 1950 8 28일부터 1953 1 16일까지 6.25기간 동안 5번에 걸쳐 기존의 조선은행 1백 원권을 한국은행 1백 원권으로 바꿔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보다 이전인 1905년에 일본의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화폐개혁이 있었다. 일본이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우리나라의 화폐제도를 일본 화폐제도의 일부로 편입시키기 위하여 구 한국화폐의 통용을 정지시키고 한국정부의 새로운 화폐와 일본 제일은행권을 법화로서 강제로 통용시킨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화폐단위의 명칭이 한국의 화폐단위인 원()에서 일본의 화폐단위인 원()으로 변경되었을 뿐 아니라 구화폐와 신화폐가 2:1로 교환되어 명목절하가 일어났다. 이 시기의 화폐개혁은 한국의 일제 식민지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한국의 화폐제도가 식민지 화폐제도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1차 화폐개혁은 6.25전쟁의 산물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13일 전이 6 12일에 한국은행이 설립되었다. 한국은행이 발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남하하게 되었다. 문제는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된 지금은(地金銀, 금은 덩어리)과 현금들. 하지만 철도를 통한 수송작전이 불가능해 구용서 초대 총재가 국방부를 방문, 군의 지원을 받게 됐다. 627일 오후 2, 군에서 제공한 트럭 1대에 순금 170, 2513㎏ 등 89상자를 싣고 극비리의 수송작전이 시작됐다. 이 금은덩어리는 이틀 뒤인 29일 진해 해군통제부에 도착했다가 81일 부산을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문제는 628일 한국은행 본점 건물이 북한군에 접수되면서 미처 옮기지 못한 순금 260㎏과 은 15970, 미 발행 조선은행권 등은 전부 북한군 손에 넘어갔다. 게다가 새로 돈을 찍는 조폐공장마저 북한군 치하에 들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북한군은 당시의 통화인 조선은행권을 약탈하고 나아가 새롭게 발행하여 남발함으로써 상당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러한 적의 통화공작을 차단하기 위해 긴급통화조치 방식으로 실시한 것이다. 그 결과 신설된 한국은행이 구조선은행권을 회수하고 신한국은행권을 유포함으로써 한국은행이 새로운 발권은행임을 일반 국민에게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행은 동경 지점에 1백 원권과 1천원 권을 일본에서 인쇄하도록 긴급 지시했다. 1950 713, 군용기편에 실려 김해비행장에 도착한 1천원 권 60억 원이 최초의 한국은행권이다. 다음날 1천원 권 92억 원, 1백 원 권 23천만 원이 더 도착했다. 이 당시 1천 원짜리 앞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1백 원짜리에는 광화문이 들어 있었다.

 

조선은행권() 1차 화폐개혁으로 새롭게 발행된 한국은행권()

독재국가나 군주국가에서나 가능한 살아있는 이승만의 얼굴을 지폐의 표지로 삼고 있다.

 

이후 1953 2 17 2차 화폐개혁이 있었다. 이는 한국전쟁 과정에 남발된 통화와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긴급통화조치 및 긴급금융조치에 근거하여 실시하였다. 중요한 내용은 화폐표기 단위는 원에서 환으로 변경시킨다 와 모든 금융거래는 100:1로 절하하여 시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발행된 지폐는 모두 5종류로 1, 5, 10, 100, 1000환으로 거북선을 도안으로 전량 미국조폐창에 의뢰하여 제조 되었지만 전면의 화폐단위는 한자로 환 이지만 뒷면은 한글로 원표시로 되어있었다. 신뢰성을 중시하는 한 국가의 지폐로서 치명타가 아닐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한국은행은 미국에 의뢰하여 제조된 지폐를 국내에서 제조된 지폐로 대체하여 유통시키고자 1953 3 7일 신체제 10원과 1953 12 18일 신체제 100원권을 한국조폐공사에서 제조토록 하였다. 이때 제조된 두 종류의 은행권은 미국에서 수입한 노란색 인쇄용지를 사용했다.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황색지 지폐라 불리는데 잠시 동안 발행된 후 몇 개월 후 국산 백지를 사용하여 계속 발행되었다.

 

2차 화폐개혁으로 미국에서 제작된 문제의 화폐

2차 화폐개혁 때 잘못 발행된 것을 대체하기 위해 다시 발행된 것으로 노란 것은 초기 것. 이승만이 자신의 우상화에 여념이 없음은 화폐개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1962 6 10일에 3차 화폐개혁이 있었다. 화폐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면서 구화폐와 신화폐를 10:1로 교환하게 함으로써 명목절하를 시행하는 긴급통화조치와 구 화폐로 있던 현금과 예금을 동결하는 긴급금융조치가 함께 시행되었다. 군사정변으로 등장한 군사정부가 인플레이션 누적으로 인한 화폐거래비용의 증가에 대처한 것이라기보다는 퇴장자금의 동원이라는 맥락에서 추진한 것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자 1960 8 15일 세종대왕이 도안된 1000환권을 발행하였고 이듬해 4 19일에는 세종대왕 500환권을 발행하였다. 그러나 이 지폐는 1962년 제3차 화폐개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962 3차 화폐개혁으로 새롭게 나온 화폐들

1962 11월에 나온 화폐

1966 8월 오백원권과 1969 3월의 오십원권

1970년대 화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