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가, Rothschild Family
18세기 이후 약 250년간 '유럽과 전세계의 돈'을 장악해 왔던 로스차일드가.
나폴레옹전쟁, 워털루전쟁, 미국 남북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의 전쟁을 비롯해 수에즈운하 건설, 산업혁명, 각국 중앙은행 설립에 이르기까지 로스차일드가는 인류 역사의 주요 사건에 개입해 왔다.
전쟁 시 양쪽 정부에 모두 돈을 빌려주어 더 많은 돈을 버는 수법으로 유명했던 그들에 대해 당시 유럽에서는 '로스차일드가의 지원이 없으면 유럽의 어떤 왕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말이 떠돌았고, 이미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던 나탄 로스차일드는 자신이 전쟁과 평화의 중재자라고 큰소리를 쳤다.
각국 왕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전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그들은 유럽 국가들의 재정까지 마음대로 움직였고, 막대한 부를 통해 유럽 경제를 움켜쥔 후에는 미국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은행가 JP모건, 절강의 카네기, 철도의 해리먼, 석유의 록펠러 등은 모두 로스차일드의 자금을 받아서 사업을 하고 거부가 된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1913년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을 설립하도록 함으로써 미국의 화폐발행권까지 손에 넣게 되며, 그 결과 막대한 이자를 벌어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유럽국가들의 식민지정책에도 돈을 지원하여.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 석탄 및 각종 지하자원 등을 개발하여 부를 축적했고 1917년 러시아의 공산혁명에도 돈을 대 마지막 남은 유럽의 독립 왕조까지 결국 무너뜨린다.
또한 영국정부의 수에즈운하 주식 매입자금을 공급하여 식민지 기반을 조성하고, 당시 오일로드 확보를 위해 영국이 점령했던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벨푸어 선언’ 즉, 영국이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에게 양도하여 유대국가를 건설하도록 한 약속을 통해서 향후 이스라엘 독립의 단초를 제공하도록 했다.
실제 이스라엘 건국 시에 로스차일드가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건국자금으로 지원하기도 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돈을 대고 있고 정보조직 '모사드'를 개인조직처럼 활용하고 있기도 한다.
현재의 로스차일드가를 만든 장본인은 마이어 암셸 바우어(Mayer Amschel Bauer)다. 그는 1744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거주지역인 게토에서 태어났다. 후에 메이어 암셸 바우어는 자신의 성씨를 아버지 골동품 가게의 이름을 따서 로스차일드(Rothschild)라고 바꾸게 된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마이어는 13살의 나이에 오펜하이머 가문 은행에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곧 정식 직원이 된 그는 당시의 새로운 금융 시스템에 눈을 뜨게 되었다. 20세가 되어 프랑크 푸르트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처럼 옛날 화폐를 취급하는 골동품점과 대부업을 시작한다.
희귀 금화 등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프리드리히 대왕의 아들 '빌헬름 황태자'에게 금화 등을 싸게 공급하며 인연을 맺게 되고, 1769년에는 왕실의 정식 대리인인 어용상인이 된다. 또한 화폐 수집상뿐만 아니라 환전상도 겸했던 메이어는 빌헬름의 런던에서 보내오는 환어음을 현금화하는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당시 왕실의 재정과 함께 국제적인 자금조달, 그리고 비밀자금 관리에도 깊이 개입했다.
황태자가 빌헬름 9세로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공하자 빌헬름 왕은 덴마크로 망명하면서 메이어에게 300만 달러의 돈을 맡기게 되고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이 돈을 다섯 아들에게 주어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 파견, 나눠준 사업자금을 발판으로 시장을 개척하며 사업을 하도록 했다.
빌헬름 왕의 자금을 받은 그는 장남 암셸을 프랑크 푸르트에 남게 하고, 살로몬을 오스트리아 빈에 삼남 나탄(네이선)을 영국 런던, 카를을 이탈리아 나폴리, 야곱(제임스)를 프랑스로 보냈다.
그의 다섯 아들들은 유럽의 전역에 은행을 설립하고, 협력하며 유럽의 금융기관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들은 통신과 마차들을 비롯해 각종 수송수단들을 이용하여 나라간 '정보 네트웍'을 만든 다음 사업에 이용하기도 했다.
1806년 나폴레옹이 영국에 대륙 봉쇄령을 내리자 유럽의 공산품 가격이 폭등했는데, 값싸고 품질이 좋은 영국 상품을 살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으로 진출한 나탄(네이선)은 프랑스에 있는 동생 야콥(제임스)와 손잡고 밀수형태로 영국 상품을 유럽에 파는 사업을 통해서 많은 돈을 벌게 된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로 진격하려던 영국 웰링턴 장군의 군대가 군비부족으로 곤경을 처하게 된 것을 알고는, 빌헬름 왕이 맡긴 돈 300만 달러와 자신이 영국과의 밀수로 벌어들인 돈을 합해서 동인도 회사의 금을 사들인다. 금값은 치솟았고 결국 영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비싼 가격에 황금을 매입하게 된다.
나탄(네이선)은 거기에다 자신이 판 금의 수송까지 제안하며 수수료를 챙긴다. 동생 제임스를 통해 프랑스 정부에 공식 통지하게 한 후, 프랑스군이 봉쇄하고 있던 길로 금을 운송하고 금화로 환전했다. 그리고 로스차일드가의 운반 통로를 통해 스페인의 영국군 월링턴 장군에게로 전달했다.
이후 나탄(네이선)은 영국 로스차일드 은행을 세우고 금융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1815년 6월 벨기에 워털루에서 벌인 전투에서 영국군이, 엘바섬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승리한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그는 곧바로 주식거래소로 향했다. 당시 그의 정보력과 재력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는데, 나탄(네이선)은 거래소로 가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국 국채를 모두 팔아 치우는 것을 본 사람들은 '영국이 전쟁에서 패한 줄'로 알고 정신 없이 국채를 팔기 시작한다. 시장은 일시에 패닉 상태에 빠지고 영국 국채는 헐값이 되었고, 이틈을 노려서 나탄(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싼 값에 국채를 모두 다시 사들이고, 영국의 승전보가 전해진 후에 폭등한 영국 국채를 되팔아 엄청난 차익을 얻었다.
막내인 제임스 로스차일드 역시 비슷한 형태로 '프랑스 국채'를 사들여서 폭락시키고 되사는 방법으로, 자신의 지위상승은 물론 재산도 함께 불렸다. 이후 이들 형제들은 왕실과의 관계, 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 이권사업을 통해서 재산을 증식해 갔으며 유럽에서 그들의 경제 장악력도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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