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나는 역사이야기/역사 한눈에

마틴 루터 킹 목사

산풀내음 2018. 4. 1. 18:53

마틴 루터 킹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 1월 15 ~ 1968 4월 4)미국침례교 목사이자 인권 운동가, 흑인 해방 운동가, 권리 신장 운동가로, 미국흑인인권 운동을 이끈 개신교 목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1) 킹 목사의 삶

 

1955 백인들은 '몽고메리 시에서 운영하는 버스에 흑인은 탈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려고 하였고, 그는 이를 반대하였다. 그러던 중 1955 12 몽고메리에서 로자 팍스라는 흑인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시 경찰서에 체포, 연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펼쳐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지도하고, 다른 흑인 및 양심적인 백인들에게도 동참을 호소하여 5만의 시민이 동참했다. 흑인 해방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1956 12에는 미국 연방 최고 재판소에서 버스 내 인종 분리법의 위헌판결을 얻어낸다.

 

백인이 버스에 타면 흑인이 뒷자석으로 옮겨야 하지만 Rosa Parks는 용기있게 일어 서지 않았다. 이 사건은 킹 목사가 본격적으로 흑인인권운동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3 8월 28 워싱턴 행진 때 링컨 기념관 앞에서 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되는 명연설을 남겼는데, 인종 차별의 철폐와 각 인종 간의 공존이라는 고매한 사상을 간결한 문체와 평이한 말로 호소해 넓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여러 지식인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인종 차별 철폐 운동에 비흑인 지식인들도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

 

1963 8월 28 워싱턴 행진 때 링컨 기념관 앞에서

 

킹은 흑인 차별 철폐운동 외에도 인종차별 철폐, 노동 운동, 시민 권익 운동에도 참여, 이를 후원하였다. 1963 8 워싱턴 에서 열린 인종 차별 반대의 집회의 연사로 참여하여 이를 주관, 20만 명의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이를 계기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인권 법안과 차별 금지 법안 통과의 실마리를 마련하였다.

 

그는 1963부터 베트남 전쟁에의 파병을 반대하는 운동에도 동참했다. 그는 무의미한 전쟁에 젊은이들을 보내서 희생시킨다는 점과 베트남 국민들을 학살한다고 지적했다. 1964 10월 14, 미국의 인종 차별을 끝내기 위한 비폭력 저항 운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다.

 

베트남전 참전 반대 운동

 

그는 맬컴 엑스 등의 활동은 극단적이라며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는 내 양심을 죽이느니 차라리 앨라배마의 고속도로에서 죽겠다'백인 우월주의자들과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협박이나 일부 백인 지도자들의 타협 주장 역시 거절하였다. 그는 비폭력주의를 끝까지 고수하였다. 그러나 맬컴 엑스 등은 그의 운동이 지나치게 타협적이라고 비난했고, 일부의 흑인 과격파는 흑인 이슬람 지도자인 엑스를 지지하며 그의 비폭력 흑인운동에 반발했다.

 

1968 테네시 흑인 청소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지원하러 그 해 4멤피스로 내려와 모텔에서 생활하며 흑인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하였다. 한편 그를 암살하기 위해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사람을 보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그의 귀에도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고 답했다. 4월 3 열린 흑인 청소노동자 모임에서도 이 소문을 접한 흑인 청소노동자들은 그에게 피신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킹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역시 오래 살고 싶다. 나라고 왜 오래 살고 싶지 않겠나?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고 싶다."고 답했다. 1968 4월 4 멤피스의 한 모텔 2층 발코니에서 미리 잠입해 있던 테네시 출신의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제임스 레이가 쏜 권총에 머리를 맞고 암살되었다.

 

"나의 어린 네 아들 딸이 어느 날엔가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되는", "어느 날엔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 노예와 노예 주인 자손들이 형제애의 테이블에 함께 앉는" 꿈을 꾸던 한 위인의 죽음이었다.

 

 

 

2) 킹 목사의 논란과 의혹

 

정치적으로 킹 목사는 미국 정부, 특히 FBI와 충돌이 심했다. 당시 FBI 의장이었던 애드가 후버는 킹 목사가 미국 공산당 내의 연계활동에 대해 특히 경계했다. 이를 증명하게 위해 FBI는 킹 목사의 사생활까지 감시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몇 가지 논란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Famous Disputes: J. Edgar Hoover vs. Martin Luther King Jr.

While Martin Luther King national US icon, one man truly detested him FBI director and eccentric J. Edgar Hoover. Although the FBI had already been monitoring Martin Luther King Jr. as part of their Racial Matters Program, after his involvement in the Montgomery bus boycott of December 1955 the FBI director held a rather personal animosity towards him.

 

 

1963 8월 28 연설을 전후하여 킹 목사는 위싱턴 윌러드 호텔(Willard Hotel)에 투숙하였다. 이 때에도 호텔에는 FBI의 도청 장치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후버는 킹 목사가 친구와 함께 창녀들을 불러 난잡한 파티를 즐기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1964 11월 20 윌리엄 설리번 FBI 국장보가 익명으로 써 킹 목사 부부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때 다른 여성과 정사중인 킹 목사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가 함께 전달됐다. 후일 설리번은 회고에서 "조사 결과, 킹은 창녀 두 명과 함께 밤을 보낼 때가 많았고, 술과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파티를 수시로 벌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1963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 중 존 F. 케네디의 아내 재클린 케네디가 무릎을 꿇고 관의 중간 부분에 키스를 하는 부분을 본 뒤 그는 ', 이 부분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지'라고 성적인 농담을 한 것이 재클린의 귀에 들어가게 됐다. 존 F. 케네디의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한 말 실수가 재클린 케네디의 귀에 들어가면서 재클린은 그의 사생활에 대한 폭로와 위선자라는 기록과 녹음을 남기게 된다. 재클린 케네디가 그의 사생활을 폭로, 비판한 것과 관련하여 FBI가 그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재클린 케네디가 입수한 마틴 루터 킹의 섹스파티는 연방수사국(FBI)의 도청 정보를 통해 입수됐다. 연방 정부의 도감청 행위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었다.


케네디의 아내 재클린과 킹 목사

 

뉴욕타임스(NYT) 2011 9 12(현지시각) 1964년 재클린이 미국의 역사학자인 아서 M. 슐레진저(Schlesinger)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7차례에 걸친 인터뷰는 케네디 부부의 결혼생활과 케네디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과정의 에피소드와 주변 인물에 대한 평가 등이 담겼다. 케네디의 외도나 죽음에 대한 내용은 인터뷰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녹음테이프는 재클린(1929~1994)이 “내가 죽고 나서 50년 뒤에 공개하라”는 조건을 붙였고, 그 동안 보스턴의 케네디도서관 소장고에 보관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터뷰의 내용 중에 미국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한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해서도 극도의 악평을 했다. 그녀는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유명한 명연설을 하기 전날 밤, 여성들을 섹스파티에 초대하기 위해 호텔방에서 전화를 걸어댔다는 연방수사국(FBI)의 도청 정보를 언급하기도 했다. 재클린은 킹 목사를 위선자(phoney)라고 평가했다.

 

1968에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치과의사의 부인과 간통, 성관계를 맺어오다가 FBI에 발각되었다. 1968 FBI가 도청한 킹 목사의 한 전화통화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흑인 치과의사의 아내였다. 그의 불륜을 눈치챈 것은 로스엔젤레스 다저스 야구팀의 스타 선수인 이먼 뉴컴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다. 돈 뉴컴 등 야구선수들의 제보를 받은 에드거 후버는 바로 킹의 전화를 도청 감청하고 사람을 붙였다. 후버는 보고서를 작성, 1968 2월 20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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