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전남

백암산 백양사의 아기단풍

산풀내음 2018. 11. 11. 12:08


'봄 백양, 가을 내장’과 함께 ‘산은 내장산이요, 절은 백양사’라고들 하지만, 전남 장성의 백암산 자락에 위치한 백양사(白羊寺) 역시 가을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다. 애기손바닥만한 단풍잎 색깔이 고와 여기 사람들은 ‘백양사 단풍’을 일러 ‘백양사 애기단풍’이라 한다. 



내장산 국립공원 남쪽에 있는 백암산(741m)은 기암괴석이 즐비한데 그 중 웅장한 백학봉의 모습이 하얗다고 해서 백양사를 창건한 여환 조사가 그 모습을 보고 '하얀 바위의 산'이란 의미로 산 이름을 백암산(白岩山)​이라 했고 절 이름도 백암사(白岩寺)라고 했다고 한다.

등산 Tip) 일반적으로 탐방지원센터 인근에 주차(5천원/일)를 하고 천천히 백양사까지 이동하면서 충분히 가을 단풍을 즐긴다. 백양사에서 약사암을 거쳐 백학봉에 오르고 그곳에서 백암산의 최고봉인 상왕봉으로 가서 운문암 쪽으로 내려와 백양사로 되돌아 오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인 듯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반대 코스를 택했다. 코스와 시간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양사 - 운문암 - 상왕봉(1시간 10분, 아주 완만하게 오르는 코스라 생각하면 된다. 운문암을 지나 본격적인 산길인데 난이도는 높지 않다.) - 백학봉(50분, 약간의 오르고 내림이 있지만 그냥 평지를 걷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약사암(20분, 계단이 잘 놓여져 있어 편하게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오르는 입장에서는 다소 힘들어 하는 듯했다) - 백양사(20분) ​

* 가을 단풍의 입장에서 본다면 백양사에서 약사암을 거쳐 백학봉까지가 최고라 할 것이다.



약수천을 따라 11월의 단풍을 즐기면서 한참을 올라가면 쌍계루를 지난 백양사가 나온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 조사가 창건한 고찰로 창건 당시에는 백암사(白巖寺)라 하였다. 고려 덕종 3년(1034년) 중연 선사가 중창하면서 '극락의 땅을 꿈꾼다'는 의미에서 정토사(淨土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조선 선조 7년 환양 선사가 '하얀 양'이란 의미로 백양사(白羊寺)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

백양사라는 이름과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 선조때 환성(喚醒) 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산에서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사라졌다. 7일간 계속된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태어났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상으로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절을 했다고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고,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백양사는 1916년 주지를 맡은 만암 스님의 중창불사에 힘입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지 취임 당시만 해도 서너 개의 건물만 있었던 백양사는 1929년 150여 칸 이상 규모의 대가람으로 변모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됐다. 만암은 2차 중창불사를 일으키며 천왕문과 대웅전, 조사전, 극락전 등을 복구해 다시금 대가람으로 우뚝 세웠다. 따지고 보면 40년에 걸친 대작불사였다.

여기서 눈여겨 볼 건 만암의 불사 방식이다. 시주를 받으면서도 사중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철칙을 세웠다. 사찰 주변에 대나무 밭을 일궈 땅에서 자란 대나무로 죽제품을 제작해 시장에 내놓았고, 양봉을 쳐 얻어 낸 꿀도 내다 팔았다. 짚신 한 짝이라도 만들어지면 곧장 시장으로 달려갔다. 외형불사뿐만 아니라 내적 불사에도 만전을 기했던 만암이었다. 절에서 제정한 청규는 그 누구라도 지켜야만 했다. 사미든 비구든 그 누구라도 법의를 입지 않고는 조석공양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 법보신문, "44. 백암산 백양사-영천굴-운문암")​

현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보전ㆍ명부전ㆍ칠성각ㆍ진영각ㆍ천왕문ㆍ선실ㆍ요사채와 범종ㆍ법고ㆍ목어ㆍ운판 등의 사물을 소장하고 있는 범종각이 있다. 이 가운데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3호인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이 백양사를 중건할 때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979년 보각행이 조성하여 새로 모신 10척 높이의 불상, 그 왼편에 용두관음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내 오른쪽으로 바늘귀를 꿰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등 해학적인 모습을 한 나한상 16체가 봉안되어 있다.


백양사 사천왕문

대웅전 한켠에 나한이 모셔져 있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2호인 극락보전은 300여년 전에 지은 것으로서 백양사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 선조 때 환양이 세웠다고 한다.


백양사는 주변의 빼어난 경관과 기도가 영험하여 청량한 기운이 샘솟아 정신수양에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전해 온다. 백양사 산내 암자로는 참선수행 도량인 운문암과 물외암, 금강대, 청량원, 비구니 선원인 천진암이 있고 기도 도량으로 영험있는 약사암과 영천굴이, 서편에 계곡과 산수가 울창하고 빼어난 청류암과 홍련암이 자리하고 있다.(출처 : 백양사 홈페이지)

약사암. 약사암은 백양사 뒤 백학봉 아래에 있는 약사여래 기도 도량이며 그 위에 영천굴이 있다.

약사암에서 바라본 백양사

영천굴은 20평 남짓한 천연석굴로 영험하다는 영천이라는 샘이 있다. 영천샘과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 한 스님이 상좌와 함께 영천굴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굴은 바위틈으로 하루에 딱 두 사람 분량의 쌀을 내보냈다. 어느 날 객승이 찾아왔다. 식구 한 명 더해졌으니 한 사람의 식량이 부족했다. 상좌는 더 많은 쌀을 얻으려 작대기로 바위틈새를 후볐다. 그러자 바위는 쌀 대신 피를 토해냈고, 그 언제인가부터 바위는 피 대신 물을 내 보냈다.」

이 물이 지금의 영천굴 약수이다. 이 약수는 병을 낫게 한다하여 많은 기도객들이 와서 기도하며 약수를 음용하기도 한다. 현재는 석조 관세음 보살상을 모시고 기도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수도하는 별채도 3칸 지어 기도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영천굴에 모셔져 있는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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