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9월/9월 10일

맨발의 아베베,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

산풀내음 2016. 8. 17. 20:44

19609 10,

맨발의 아베베,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

 

1960 9 10,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 경기장에서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인들은 깜짝 놀랐다.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 선수가 1위로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한 것은 그는 맨발이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아베베 바킬라(Abebe Bikila, 1932 8월 7 ~ 1973 10월 25)였다.

 

당초 그는 대표팀의 일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선수가 발목에 부상을 당하는 일이 생겨 아베베에게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날 마() 2시간20분 벽을 깨고 2시간1516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올림픽 마라톤 사상 첫 아프리카 흑인의 우승이었고 이후 세계 마라톤계를 평정할 검은 돌풍의 서막이었다. 지구력만이 중시되던 마라톤에 ‘스피드’라는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맨발 우승 후 마라톤이 국제적인 인기 종목으로 부상하고 아프리카 선수들이 세계 육상 무대의 중장거리를 휩쓸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우승이었다.



 

A jubilant Bikila is hoisted shoulder high by an exultant crowd.



The three winning athletes celebrate after receiving their medals under the Arch of Constantine. Bikila (centre) has gold, Rhadi Ben Abdesselam (left) silver and Barry Magee (right) bronze.



황제에게 상을 수여 받고 있는 아베베 비킬라

 

1895년에 이어 1935년에 재차 조국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의 수도 한복판에서 건져 올린 값진 금메달이었다.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과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게 당했던 치욕을 아베베가 이탈리아에서 맨발로 설욕했다며 환호하고 기뻐했다.

 

1960년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투어 독립을 쟁취하던 이른바 ‘아프리카의 해’였던 터라 검은 대륙 전체가 열광하며 축하해 주었다. 한 신문은 “에티오피아를 점령한 것은 무솔리니의 대군단이었지만 로마를 정복한 것은 셀라시에 황제의 근위대에서 온 단 1명의 병사였다”고 보도했다.

 

맨발로 풀코스를 달린 아베베를 두고워낙 가난해서 신발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베는 가난해서 맨발로 달린 것이 아니었다. 부상 선수의 대체요원으로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했기 때문에 그에게 맞는 신발이 없었다. 마침 맨발로 달렸던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맨발로 경기에 참여했던 것이다. 참고로 1960년대만 하더라도 에티오피아 1인당 GDP가 대한민국 1인당 GDP보다 높았다.

 

아베베는 1932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약 130km 떨어진 자토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20세 때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근위대에 들어가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대대장 경호병으로 1년 간 6·25전쟁에 참전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후 에티오피아 군인 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육상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4년 후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그는 이번에는 운동화를 신고 달렸다. 아베베는 세계신기록을 3분이나 앞당기며 2시간1211초로 다시 세계신기록을 갱신하며 금메달을 땄다. 세계 최초 올림픽 마라톤 2연패였다.


 

Bikila entered the Olympic stadium alone, to the cheers of 70,000 spectators. He finished the marathon in a new world record time of 2hours, 12 minutes and 11seconds 4minutes, 8seconds in front of the silver medallist, Basil Heatley of Great Britain. Kokichi Tsuburaya was third. Bikila was the first athlete in history to win the Olympic marathon twice. After the finish he went on to astonish the crowd. Not appearing tired, he began a routine of stretching exercises. He later said that he could have run another 10km.

 

일본은 아베베가 우승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국가를 준비하지 않아 시상식장에 일본가요가 울려 퍼지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여기에다 그가 경기 6주 전 맹장 제거 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세상을 또 한 번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는 높은 고도와 부상,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17㎞ 지점에서 기권하면서 그는 차츰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 3월 에티오피아 황제가 하사한 차를 몰고 가다 빗길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지독한 재활훈련을 시작했고 두 다리 대신 두 팔로 할 수 있는 스포츠에 도전하였다. 결국 노르웨이에서 열린 제 19회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해 양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73 10월 또 한번 시련이 닥쳤다. 휠체어를 타고 가던 아베베는 또 다시 교통사고를 당했고 결국 뇌출혈로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아베베의 장례식에는 65000명의 조문객들이 찾아 그의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기렸다.





In 1969, during civil unrest in Addis Ababa, Bikila was driving his Volkswagen Beetle when he had to swerve to avoid a group of protesting students. He lost control of the car and it landed in a ditch, trapping him. He was freed eventually but the accident left him quadriplegic. He was operated on at the Stoke Mandeville hospital in England and his condition improved to paraplegic. Niskanen convinced him to take up archery and Bikila entered competitions for athletes in wheelchairs, including the International Paraplegic Games, for which he was practicing in this picture, at the Stoke Mandeville stadium.